▲ 국정원이 공개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 지난 24일 오후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여야 의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제작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의 표지.
권우성
그러나 이번 국정원의 전격적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는 그런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나마저도 의심케 만들었다. 다시 뉴스를 보게 만들었다. 그들의 남북정상회담회의록 공개는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의 외교적 관례를 뛰어 넘어 너무 큰 피해를 감수하는, 뜬금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소위 'NLL' 카드가 보수 세력의 '꽃놀이패'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민주당은 정치적인 파장을 우려해 회의록을 전격으로 공개하자고 할 수 없는 것이 뻔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새누리당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은 최고의 만병통치약이었다. 실체는 없지만 정국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소위 '반노'를 기반으로 '종북몰이'를 획책할 수 있는, 최소한 2014년 지방선거부터 시작해서 이후 총선, 대선까지도 효과적으로 써 먹을 수 있는 최고의 히든카드였다.
그런데 국정원이 갑작스레 이 카드를 뽑아버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절대 부정'을 하며(절대 부정은 곧 긍정이다), 국정원의 자부심을 운운하며 말이다. 과연 언제부터 그들이 양지에서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던 조직이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보수 언론들은 그것이 맥락상 'NLL 포기'라고 우기지만 이제 NLL 카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괴력을 발휘할 수 없다. 내용 자체에 대한 해석이 하나의 논쟁이 되는 순간 그 절대적인 힘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포커 게임에서 소위 '뻥카'를 보자. '뻥카'를 까는 순간 그 플레이어는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상대방은 그의 위협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도대체 왜 국정원은 '꽃놀이패'까지 까 보이며 현재 시국을 물타기 하려고 했을까?
이와 관련하여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은 두 가지 뿐이다. 첫째, 현 정부가 아직 국정장악을 완벽하게 하지 못해 부서 간 혼선으로 우왕좌왕하고 있거나 둘째, 국정원이 댓글 알바와 관련되어 국정조사를 당하면 뭔가 더 큰 것이 발견되기 때문에 작정하고 물타기를 하려는 경우.
물론 우리가 주목할 것은 두 번째 가능성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대로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를 1970년대로 되돌릴만큼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예 대놓고 국내 정치에 개입하였으며,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를 결정적으로 훼손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촛불을 다시 들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과거 '중앙정보부'의 악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는 본능적인 불안감 때문이다.
설마 우리의 역사가 30년 전으로 돌아가겠냐고? 방심은 금물이다. 우린 벌써 그 가능성을 지난 5년 동안 충분히 확인했다.
올 여름은 이후 5년의 역사가 좌우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은 중지를 모아 무엇을 지키기 위해 누구와 싸워야 할지 전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하며, 여당은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일을 스스로 멈추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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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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