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 실시되는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5일 오후 서울 청계천에 선관위 투표 참여 캠페인으로 전국에서 출마한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내걸려 있다.
권우성
말을 풀지 않는 사전 선거운동 규정은, 사실상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항"(김래영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이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인정하는 지점이다. 현 민주당 의원인 유승희 의원은 지난 4월 "사전선거운동금지 조항은 나같은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유리하지만 정치 신인의 도전을 어렵게 만든다"고 밝힌 바 있다. 2004년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을 결정하기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유시민 의원도 "현직 국회의원은 1년 내내 또는 4년 내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을 했다.
즉, 현역 의원의 경우 '지역구 관리'라는 명목 하에 자유롭게 진행돼 온 말과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을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선관위 개정 의견은 이를 정치신인에게도 개방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광고 등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요구되는 선거운동의 경우 기간 제한을 남겨뒀다. 말은 풀되 돈은 묶어 두기 위함이라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실상 사전선거운돔 금지 규정을 대부분 없앤 거라고 볼 수 있다"고 자평했다.
선관위가 제출한 의견에는 정치신인에게 작용했던 '진입장벽'을 해소하는 방법도 포함됐다. 정해진 기간에만 등록이 가능했던 예비후보등록제를 폐지해 상시 등록이 가능하게 한 것. 다만 선거운동은 선거사무소 설치와 명함 배부, 어깨띠 착용 등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분야로만 한정했다. 다소 제한적이지만 예비후보들은 명함과 어깨 띠 착용을 통해 '이름 석자'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찬성의 뜻을 밝히고 있다.
선관위는 26일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해당 개정 의견을 보고했다. 여야 의원들은 입을 모아 "선거운동을 상시화 하면 돈이 많이 들 것이다", "4년 내내 어깨 띠 두르고 다니라는 거냐"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결국, 안행위 차원에서 개정 의견 관련 토론을 한 차례 더 갖기로 했다.
개정의견은 처리 첫 관문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향후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만들게 될지, 안행위 차원에서 법안을 처리할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계속해서 처리가 미뤄질 시 올해 안 법안 통과에서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곧 다가올 국정감사(9월), 재보궐선거(10월), 예산안 심사(11월)만으로도 국회 일정이 빠듯하다. 당연히, 내년 지방선거 적용도 요원해 진다. 선관위가 26일 안행위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다.
선관위, '말은 풀고 돈은 묶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 국회 제출
'현역 vs 예비후보자' 개정 의견 두고 극과 극 |
'말'과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상시화 하고, 예비 후보자 등록 역시 상시화 하는 선관위의 개정의견에 대해 현역 의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소속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예비후보자가 상시 선거 운동을 하게 되면 선거 다음 날부터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명함 돌리고 어깨띠 두르고, 문자 보내면 선거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며 "정치쇄신특위 의원들은 100% 다 반대"라고 말했다.
정치쇄신 특위 야당 간사인 문병호 민주당 의원은 "선거법이 네거티브 방식을 규정하고 그 외에는 허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 개정의견은 옳은 방향"이라면서도 "사전선거운동을 무제한으로 하는 건 취지는 좋으나 선거의 조기과열과 유권자의 선거 피로감, 후보자의 경제 부담 가중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현역 의원들과 경쟁해야 하는 원외지역위원장들은 입을 모아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영호 서대문 을 지역위원장은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어깨띠를 걸고 명함이라도 돌릴 수 있는데 그게 어디냐 싶다"며 "예비후보자가 돼도 특별히 비용 드는 부분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만 가능하다, 현역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겠지만 이 정도는 통과시켰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 경쟁해 내리 3번 쓴 잔을 마신 김 위원장은 "현역 의원들은 의정 활동 자체가 언론 보도되고, 의정보고서도 하나의 홍보물로 만들어서 전 주민에게 배포할 수 있지 않나"며 "현역 의원들은 굉장한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현역 프리미엄에 맞서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역 밑바닥을 도는 것밖에 없다"며 "오죽하면 '모기와의 전쟁'을 한다며 뉴타운 회충 박멸 활동을 수십차례 했겠냐"고 토로했다.
김종희 용인 병 지역위원장도 "현역은 행사에 가도 소개 받고 마이크도 잡지만 우리 같은 원외 지역위원장은 마이크도 안 준다, 명함도 제대로 없다"며 "예비후보로 등록되면 명함도 가질 수 있고, 어깨띠라도 두를 수 있어 그나마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과 3번 맞붙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는 "한선교 의원은 길거리에서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면 낯이 익으니 '한선교가 저걸 하네'라고 하지만, 내가 하면 '저 아저씨는 누군가' 신경도 안 쓸 것"이라며 "어깨띠를 두르면 나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 쪽(현역 의원)은 보좌관 등을 동원해 팀을 짜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한 쪽은 아예 배제돼 있는 거 아니냐"며 "(정치관계법이 개정되면) 돈 안들이고 유권자 많이 만나는 방향으로 개선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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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개정 의견에 따르면, 후보자가 집이나 차에 선거 홍보물을 붙일 수 있게 했고 광고를 제외한 인쇄물(선거운동 목적 시 금지) 등을 올리는 것도 허용된다.
더불어, '집회의 자유'도 허용된다. 그동안 선관위는 4대강, 무상급식 등을 선거 쟁점이라 지칭하며 이와 관련된 시민단체, 정당, 종교단체 등의 찬성·반대 활동이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불허해왔다. 이에 "지나치게 정치개입을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던 선관위가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집회·모임만 개최할 수 없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에 나선 것이다.
또, 유권자와 후보자가 만날 수 있는 접촉 경로도 다양화 했다. 대표적인 예로 '토크 콘서트'가 가능해 진다. 유권자와 (예비) 후보자가 실내에서 만나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정책과 공약에 대해 얘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론기관이나 이익단체들이 여는 대담·토론회도 언제든 가능하도록 열어뒀다. 정당이 정강·정책 등을 언론을 통해 홍보하고 연설하는 데 대한 제한 규정도 삭제했다.
언론이 정당·후보자의 정책·공약에 대해 점수 매기기도 허용된다. 지난 해 대선 당시 <오마이뉴스>는 각 후보의 10대 공약에 대해 공약 인기도를 측정하기 위해 '하트주기'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후보자 정책 서열화 금지 조항에 위반된다고 판단, 주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결국 <오마이뉴스>는 하트주기 방식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으나 다음 지방선거부터는 이를 부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돈 줄은 묶었다. 선관위가 제출한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에 따르면, 후보자는 정치 자금이 오고간 후 48시간 내에 그 내역을 선관위 회계 프로그램에 입력하도록 했다. 돈의 흐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같은 맥락에서 선거 비용이 아닌 정치 자금의 수입·지출 명세서도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또, 선관위는 정당에 지급되는 선거비용 보전금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선거 시, 후보자 등록 마감 후 정당에 선거 보조금을 지급하고, 선거가 끝나면 또 선거비용을 보전하는 현행법을 바꿔 정당에 선거비용 보전 금을 지급하면 이미 지급된 보조금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감행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중 국고 지원이 줄어, 수 십 억 원의 선거비용 보전금이 감액될 것으로 예측된다.
선관위는 대통령·시도지사 선거 방송 토론회 참석에도 제한 규정을 뒀다. 1차 토론에는 현행처럼 국회의석 5석 이상 정당, 여론조사 5% 이상 후보 참석을 그대로 적용하되, 2차부터는 '여론조사 지지율 10% 이상'의 규정을 만들어 토론에 참석하게 한다는 것이다. 3차 토론의 경우, 여론조사 1·2위로 제한을 더 좁혔다.
'이정희 방지법, 자의적 해석 가능 여부' 등...한계점 여전히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