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사들은 왜, 어떻게 자영업자가 되나

[서평] 대한민국 의료상업화 보고서 <병원장사>

등록 2013.06.21 17:10수정 2013.06.2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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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장사>
<병원장사>씨네21북스
2011년 10월 중순 밤, 아들이 작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옷을 갈아입다 손을 짚는다는 것이 하필 나무 장식으로 멋을 낸 소파 두 개가 이어지면서 생긴 틈으로 손이 미끌어져 들어갔고, 억지로 빼다가 오른쪽 손등 부분 넷째 손가락뼈가 부러지고 만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제일 큰 한 종합병원(이하 A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9시간 후인 다음날 아침 8시 30분으로 수술이 예약되었다. 물론 병원 측의 일방적인 권유에 의해서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발생할 수 있는 수술방법과 비용 등을 물었더니 '전신마취 후 수술을 할 것이다. 비용은 100~150만 원 정도가 들 것'이라 했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수술은 잘 될까. 잘 나을까. 막연한 걱정도 컸지만, 작은 뼈하나 잇는데 해당 팔만이 아닌 전신마취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심란했고,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겪을 뻔한 과잉진료 사례

결국 다른 대학병원(이하 B병원)을 알아봤고, 사고 발생 4일째가 된 날 오전 10시 무렵으로 수술일정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B병원에서도 수술을 하지 않고 동네의 한 개인병원(이하 C병원)에서 다음날 수술을 했다. B병원에선 '사고발생 시점으로부터 1주일 안에만 수술하면 된다'고 했지만 1초라도 빨리 치료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이다.

A병원이나 B병원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C병원에선 전신마취 후 수술을 해야 한다는 A병원과 달리 오른쪽 팔만 마취한 후 밖에서 작은 철심을 박아 넣어 뼈를 고정해줬다. 비용도 A병원이 제시한 금액의 10분의 1정도인 10만 원 가량. 수술 직후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수술이었다.

물론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A병원이 권한 수술방법, 그러니까 손가락 뼈 하나를 잇는데 전신마취를 해야만 하는 수술방법은 과잉진료란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치료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를 믿으며. 그런데 의사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자나 보호자의 상황을 이용해 일부 병원들과 의사들이 돈벌이를 한다면?

제게 병원은 블랙홀입니다. 그곳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집니다. 저만 처지가 옹색한 건 아닐 겁니다. 환자와 그 가족은 치명적 약자입니다. 의사의 처분에 모든 걸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건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김기태 기자가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를 기획하겠다고 했을 때, <한겨레21>의 편집장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반가웠습니다. 덕분에 한국의 보건의료시스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알고 싶다는 평소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영역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정부의 의료 상업화 정책을 외면한 채 '돈독이 오른 병원과 의사 탓으로만 돌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저자의 지적이 머리를 맴돕니다.
- <병원장사> 추천글 중 이재훈(<한겨레21> 전 편집장)


<병원장사>(씨네마21북스 펴냄)는 우리 가족이 하마터면 말려들 뻔 했던 과잉진료 등,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일부 병원·의사들의 행태와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한겨레신문>의 김기태 기자. 그는 가짜 환자가 되어 여러 병원들을 돌며 직접 진료를 받으며 얻어낸 것들을 토대로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들려준다.

환자를 돈벌이로 보는 일부 병원들의 민낯

저자가 가짜환자로 처음 찾은 병원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했으며 그 지역에선 꽤 유명한 한 척추전문병원이었다. 김 기자가 "한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하루에 대여섯 번씩 통증이 있다. 특별한 원인은 없고, 통증 외에는 다른 문제는 없다"고 호소하자, 병원측은 처음부터 70만 원 정도 드는 MRI촬영을 권유한다.

그러나 환자 즉 저자가 선뜻 응하지 않자 2주간의 약을 처방하곤, 2주 후에 다시 찾아가자, 다시 MRI촬영을 권유한다. 정말 허리가 아픈 환자라면 권유를 물리치지 못할 '이 정도로 약을 먹거나 물리치료를 하면 대부분 낫는데…'와 같은, 경우에 따라 '허리통증을 치료하려면 MRI 촬영은 필수'라고 들릴 만한 설명도 곁들여서 말이다.

실험을 위해 두 번째로 찾아간 병원은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공공의료병원으로 지정한 B병원. 이 병원 역시 결론적으로는 MRI촬영을 권한다. 그러나 처음 찾은 병원과의 차이는 엄청났다.

첫 번째 병원은 MRI 아니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처음부터 권했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땐 '것 봐라'는 식으로 반 강요한 것과 달리, 두 번째 병원은 약을 먹어보며 어느 정도 지켜보다가 그래도 별 수 없으면 MRI 촬영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치료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MRI 촬영비용도 50만 원으로 무려 20만 원이나 차이가 났다. 약도 B병원이 훨씬 적게 처방했다.

'묻지마 식 척추수술은 (심평원의)통계에서도 드러났다. 병원 가운데 절반은 척추 수술의 전 단계인 약물치료나 물리치료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바로 수술로 직행했다.(줄임) 흔한 허리질환인 '디스크'의 경우 통증을 느끼는 환자의 90%는 한두 달 안에 자연치유가 된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는 의대생들의 교과서인 <필수정형외과학>에 나오는 상식이다. 병원에서 환자가 고통을 호소해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일단 '보조적인 시술'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환자를 바로 수술대로 올리는 병원은 충격적인 정도로 많았다.

'의사들의 수술유도'는 어떻게 풀이될까.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병원, 심지어는 지방의료원이나 국립대학병원에서도 '매출'을 늘리는 의사에게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일반 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간병원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 의사들로서는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보다 검사라도 하나 더 받게 하는 것이 병원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의 인센티브도 올리는 길이 된다." - <병원장사>에서

아마도 이런 부분을 읽으며 어이없어 할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만 4명이 디스크 수술을 했을 정도로 디스크 수술은 우리 사회에 아주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정형외과만의 사정일까? 다른 진료과목들도 마찬가지였다. 저자의 가짜환자 실험은 계속됐고 그와 함께 우리나라 병원들의 장삿속 행태들이 속속 밝혀진다.

책은 저자가 가짜 통증을 호소했음에도 처음부터 비싼 MRI촬영을 권하거나 가벼운 출혈을 말했을 뿐인데 10년쯤 묵은 중증 치질로 만들어 '수술만이 최선의 치료방법'인양 권하는 병원의 행태를 통해 병원 혹은 의사들의 과잉진료 실상을 낱낱이 알려준다. 

이 책이 더욱 설득력 강한 이유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다양한 자료, 그리고 일부 의사들의 증언을 함께 녹여 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계 문제점을 소개한 <병원장사>

사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당시 A병원의 수술예약을 깨고 다른 병원을 찾아 헤매는 동안 한편으론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지불한 병원비를 보장해주는 의료비 실손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결론적으로 내 돈은 들지 않는 상황이었고, 시설 좋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형병원에서 그냥 수술을 받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안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추천받은 병원이라 안심되었지만 한편으론 여러모로 A병원이나 B병원보다 규모가 작고 시설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수술 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됐다. 여하튼 이런 흔들림과 불안은 공연한 것이었다는 듯 수술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런 경험 때문에 <병원장사>를 통해 우리나라 병원들의 추측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점들과 그 실태들를 만나는 동안, 하마터면 나도 의사들의 돈벌이 수단 혹은 의료 피해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이미 지나간 일임에도. 여하간 돈벌이를 앞세운 의사의 과잉진료 앞까지 갔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나눔의 집
사실 환자 혹은 환자의 가족으로 의사의 권유를 물리치긴 쉽지 않다. 아마 나도 당시 누군가 C병원을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A병원이나 B병원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을 적극 권한다. 우리나라 병원들의 문제점과 실태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파헤친 책의 내용들이 내게 C병원을 추천해준 사람처럼 독자들에게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의료상업화 보고서'인 <병원장사>는 과잉진료 실태를 파헤친 1장에 이어 2장에선 돈벌이를 위해 편법 혹은 불법적으로 이어지는 의료시술의 문제점들을, 3장에선 중·대형 병원들의 위세 속에서 말라죽는 동네병원들의 현주소를, 4장에선 의료생태계를 파괴하는 대형병원들의 무한경쟁 실태와 '병을 만드는' 건강검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그 진실을 들려준다.

이어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해야 할 공공의료기관들의 타락과 위축,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크고 작은 병원에서 찬밥신세가 된 지 오래인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의 문제, 병원들이 수익을 앞세워 비용을 절감하며 발생하는 의료사고, 의사가 아닌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수많은 문제점들이 보고됨에도 의료민영화를 추구하는 이해관계자들 등 우리나라 의료계 전반의 문제점들을 9장에 걸쳐 소개한다.

슬프게도, 현실에서는 사람의 목숨 값이 사회ㆍ경제적 여건에 따라 쉽게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이유도 기실은, 노동자의 목숨 값이 너무 싼 것이 이유였습니다. 자본은 안전장비 설치 비용과 노동자의 목숨 값을 저울질한 뒤, 더 싼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한 해 수천 명의 노동자들은 떨어지고, 짓이겨지고, 깨졌습니다. '돈이 되는' 암전문센터들이 전국의 대학병원에 줄줄이 생겨나는 동안, '돈 안 되는' 중증외상전문센터는 한 곳도 제대로 문을 연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싼 목숨'들은 깊이 앓았고, 크게 다쳤고, 쉽게 사라졌습니다. 계층과 죽음의 함수관계는 현장에서도, 통계에서도 도드라졌습니다. 사람 목숨에 가격표를 다는 세상을 거부해야 할지, 잔인한 시장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가난한 자의 목숨 값을 그나마 높게 쳐달라고 요구해야 할지, 두 갈림길 사이에서 당혹스럽고 참담했습니다. -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 앞서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불평들을 다룬 르포집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2012년)와 관련 정책이나 단속과 처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우리나라 성매매 실태를 다룬 <은밀한 호황>(2012년)을 썼다. 특히 이 책을 쓴 동기 중 하나가 된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로는 엠네스티 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덧붙이는 글 <병원장사>-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김기태 (지은이) | 씨네21북스 | 2013-03-11 |정가 13,000원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김기태 (지은이) | 나눔의집 | 2012-06-08 |정가 14,000원

병원장사 -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김기태 지음,
씨네21북스, 2013


#의료상업화 #공공의료 #의료민영화 #병원 OTL #과잉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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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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