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조사 받고 나오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4월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권우성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불법이라는 것은 굳이 국정원 직원이 아니더라도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일이다. 국가정보원법을 다시 보자. 정치 관여 금지를 다룬 제9조에서는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5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중 두 번째는 "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적시하고 있다.
또한 "소속 직원이나 다른 공무원에 대하여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그 행위와 관련된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거나 이를 약속 또는 고지하는 행위"다. 즉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말씀' 자체가 범죄라는 것은 해석을 달리 할 수 없는 명백한 일이다.
따라서 구속력이 없는 불법적인 명령에 복종하는 행위는 위법성은 물론 책임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대법원에서는 지난 1988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선고 재판에서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른 행위는 정당행위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상관은 하관에 대하여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고, 하관은 "명백한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할 의무는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대법원은 박종철 열사를 고문했던 이들은 책임 조각(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던 것이다. 그런데 14일 검찰은 대법원의 판결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렸다.
내부 고발한 직원은 기소, 불법주도한 직원은 기소유예 검찰이 대통령 선거라는 중대한 시기에 이런 명명백백한 불법행위를 사주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데 범죄를 함께 모의하고 지시한 간부들와 직원들을 기소를 유예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불가다.
게다가 검찰은 댓글공작을 실행한 직원들을 기소하지 않은 대신, 국정원의 불법 공작을 폭로한 직원 2명을 기소했다. 국정원의 불법 활동에 대한 폭로가 야당의 선기기획에 활용되어 국가정보원법과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이쯤 되면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 도대체 뭘 의도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생각해보라. 불법 활동에 동참한 직원은 상명하복을 이유로 기소조차 되지 않고, 불법 활동을 폭로한 직원은 사법처리가 된다? 만일 당신이 국정원 직원이라면,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할 때 범죄행위에 동참하겠는가, 아니면 고발하겠는가? 범죄의 공모자는 면책되고 내부 고발자는 처벌되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사회의 부정과 부패는 끊임없이 뿌리를 넓혀 왔다.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인해, 이제 국내 최고의 정보기관을 활용한 불법적인 정치개입, 선거개입은 희생양 한 명만 찾으면 가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한 명만 총대를 메면, 나머지는 무사한 꼴이 됐다. 앞으로 어느 권력자가 이런 효율적인 방법에 매혹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치검찰의 자아 분열, 국민들도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