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전두환 골프대회가 열린 대구인터불고 골프장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축하화환을 보내고 직접 골프를 쳤다.
조정훈
- 주로 어떤 물건들이 배달되나. 제일 기억나는 물건은?
"택배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은 한정적이다. 진짜 비싼 건 직접 주겠지. 대부분이 과일이나 굴비 같은 선물세트로, 라면박스 크기라고 보면 된다. 작은 건 거의 안 온다. 가끔 사과박스 같은 거 배달할 때면, 기사들끼리 '혹시 이거 돈 든 거 아냐?' 뭐 이런 얘기도 한다. 뜯어보지 않으니 내용물은 알 수 없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멸치 박스를 보낸 적도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안에 돈 들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정성스럽게 싸서 보냈더라. 근데 물건을 드는데 멸치 냄새가 팍 났다.
기억에 남는 건 올해 명절에 배달한 물건이다. 보통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써서 보내지는 않고, 보좌관이나 익명으로 해서 보낸다. 그런데 올 초 설날에 국무총리가 보낸 건 특이해서 기억이 난다. 그때 총리가 김황식이던가? 보내는 사람이 '국무총리실'로 돼 있고, 주소는 국회의사당, 그러니까 여의도동 1번지로 되어 있었다. 한우세트였는데, 한 15kg 정도로 굉장히 무거웠다.
우리는 물건을 딱 보면 이게 좋다, 안 좋다 감이 오는데, 그건 포장부터가 굉장히 비싸보였다. 웃긴 건 총리실에서 똑같은 박스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한꺼번에 선물을 보냈다는 거다. 한 사람만 주면 말이 나오니까, 아마 그렇게 했겠지. 그런 한우세트가 보통 40~50만 원 정도는 할 거다. 백화점에서 보니, 한우세트 비싼 건 100만 원대도 있더라. 전두환의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들어오는 선물만 팔아도 29만 원은 넘지 않겠나."
- 그런 비싼 물건 배달할 때 기분이 어떤가.
"뭐 내가 선물하는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지. 굳이 저런 사람들한테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나 싶다. 일단 세금 문제부터 그렇지 않나. 돈을 그렇게 해먹었는데, 당장 추징금부터 뱉어내야 할 거 아닌가. 얼마 전 TV조선에서에 한 '5·18 북한군 개입설' 방송도 봤는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 들으면 그때 가족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상처가 클까 싶다.
그리고 아직도 '대통령 각하'라고 써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택배 송장은 거의 프린터로 출력돼서 나오는데, 거기에도 그렇게 쓴다. 전두환은 서대문구 연희2동 95-4번지, 노태우는 연희1동 108-17번지, 이렇게 두 전직 대통령 주소는 번지수까지 외우고 있어서 그 집 물건은 유심히 보게 되는데, 가끔씩 '대통령님께' 이렇게도 보내더라. 현직 대통령이 아닌데도 말이다. 특히 '각하'라고 쓴 거 보면 어이가 없어서 어떤 놈들이 보내는지, 뭐하는 사람들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친구들에게 내가 전두환 사저에 택배 배달한다고 말하면 "전두환 얼굴 보면 욕 좀 해줘" 뭐 이러더라. 주변에서 전두환 좋아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본 거 같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더 싫어하고."
"한 달 전부터 심해진 경호, 사복경찰도 눈에 띄게 늘었다" - 최근 분위기는 어떤가. 좀 달라진 점이 있는지?
"전두환 사저 경호가 더 삼엄해졌다. 노태우 쪽은 평소처럼 경호원들이 집을 둘러싸고 동서남북 4명 정도만 배치돼있다. 전두환 집은 경호원이 6~7명으로 더 많은데, 요즘에는 사복 입은 경호원도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게 눈에 띈다. 예전엔 전경만 있었는데, 4·5월쯤부터 사복 입은 경찰들이 어슬렁거리는 거다. 옆에 워키토키 같은 무전기 딱 들고, 동네 집 근처만 서성이는 거 보면 딱 경호원인 게 티가 난다.
최근엔 오는 택배도 많이 뜸해졌다. 예전에 명절에는 하루에도 6~7개씩 매일 배달했는데, 최근에는 한 달에 한두 번이나 갈까? 아무래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도 있고, 관련 보도도 나고 하니까, 정치인들도 몸을 사리는 거겠지. 반면 노태우 집은 그나마 물건이 온다. 전두환과 달리 노태우 쪽은 가끔 가족들이 홈쇼핑 같은 데서 자잘하게 생활용품 등을 사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물론 두 집에 들어가는 택배기사가 나 혼자는 아니다. 대기업 택배는 물량이 2~3배로 훨씬 많으니까, 전두환 집에 배달하는 물품도 우리보다 두 배 이상은 많겠지.
어제(10일)도 전두환 집 지나가는데 근처가 시끌시끌했다(관련기사 :
"왜 경찰이 전두환을 보호하는데? 저 살인마를…"). 일터가 거기라서 일요일 빼고는 매일 연희동에 가는데, 유독 다른 날보다 경찰도 많이 서 있고 어수선했다. 사실 노태우 사저 앞으로는 일반인들도 지나다닐 수 있고 시위도 적어 조용한 편이다. 전두환은 관련사건 있을 때마다 노태우 쪽보다 더 시끄럽긴 하다. 일단 일반인이 못 다니게 집 앞 길을 막아놓은 것 자체부터가 그렇지 않나. 전두환 관련해서 집 근처에 풍자 포스터도 붙이고 그런다는데, 그래서 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봤다. 붙이자마자 경호원들이 떼니까 그런 거겠지.
근데 오히려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은 그 대통령들이 사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경호원이 만날 상주하면서 지키는데 도둑이 있겠나. 그 집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배달 왔다고 전화하면 집 앞에 놓고 가라면서 '괜찮아요, 아무도 안 가져가요' 하더라. 보통 사람들은 못 그러지 않나. 그래서 그 동네 배달하기가 편하다. 잘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다."
"17년 끈 1672억 환수를 4개월 만에? 제대로 추징 않는 건 국가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