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풍아파트 주변의 보도블록. 2012년 여름 필자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촬영한 것이다.
박찬운
그러니 비만 한 번 내려도 내려앉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 이곳저곳의 보도블록들이 대체로 이런 방법으로 깔렸을 것이다. 1년에 수 백 억 원을 보도블록에 투자하면서도 그 공법은 로마인이 보면 기겁할 수준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부실공사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로마인의 후예라고 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발견되니 말이다. 내가 지금 체류하고 있는 룬드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고, 과거 중세시절 이곳을 지배한 덴마크의 가장 중요한 종교 도시였다. 아직도 천 년 역사를 지닌 룬드 대성당(종교개혁 이후에는 루터교회가 되었음)이 도시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고, 도시 곳곳에 중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있다. 나는 지난 1년간 이곳 룬드 시내 한 가운데 살면서 시내 산책을 거의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다. 룬드는 내가 보아 온 어떤 유럽 도시보다 아름다운 역사도시다.
아직도 중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룬드 시내 도로는 폼페이에서 본 듯한 돌 포장길이다. 룬드의 밤거리를 지나다 보면 중세 도시를 걷고 있는 듯 한 착각을 하게 된다. 멀리서 다가오는 달가닥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다 보면, 마치 내가 1천 년 전 중세 어느 도시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이런 룬드의 돌 포장길의 수준은 어떨까.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 가끔 룬드의 돌 포장 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기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로마인들이 보았더라면 서울이나 여기나 오십보백보 수준이다. 돌과 돌 사이는 손가락이 아니라 발가락이 빠질 정도로 틈이 벌어져 있고, 변변한 배수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룬드에서는 여인들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자칫 그런 신발 신고 멋을 내다가는 필시 돌 틈에 굽이 껴 넘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포장 공사를 하기에 유심히 지켜보았더니 여기도 그저 모래 끼얹고 간단히 다진 다음 그 위에 돌을 올려놓는 것이 전부였다. 로마인들이 이런 공사방법을 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