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도둑이다> 표지
한겨레출판사
<나는 꽃도둑이다>에서 작가는 청계천변에 터 잡고 살아가는 노점상과 자영업자, 이주노동자의 일상을 그린다. 이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주 소박하다. '우리가 타인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배척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기본적인 물음이다.
밑에서 봉급이나 타먹는 이들이야 심간 편하겄지. 막상 경영을 책임지는 오나 입장이 되믄 고민되는 게 부지기수여. 막말루 장사 안 되구 골 아프니 가게 문 닫아버리믄 내야 위치게든 못 살겄어? 솔직히 그리 되믄 영식이 엄마는 워측허구, 배달허는 종철이는 당장 워쩔 것이냔 말이여.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떡볶이며 순대까지. 골목상권을 유린하는 유통재벌의 행태를 비추어 보면 '먹도날드 분식' 사장인 김명식의 아내는 분명 경제권력에 핍박받는 약자다. 그러나 그녀는 팔다 남은 김밥쪼가리로 해결하던 점심식사를 개선해달라는 분식점 직원 영식엄마의 요구에 발끈한다.
하여간 다문화인지 뭔지가 문제야. 지금 안산이나 수원 쪽에서는 밤이면 사람이 다니지를 못해. 방글라에 필리핀 베트남에 오사리잡놈이 다 몰려와서 강도질에 강간으로 야단이다 이거야. 거. 누구야! 여자 잡아다가 이백팔십 점으로 사시미 친 놈. 으잉. 오원춘이. 그런 놈들이 버글버글하대니까.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월남전 참전용사 박금남은 공산주의 때문에 배곯아 조국을 등진 탈북자 노점상 경일을 '빨갱이'라 의심한다. 뿐만 아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비엔 역시 그가 보기에는 '정조 없는 여자'다. '다문화'라는 말로 그들과 공존을 요구하는 세상이 금남에게는 '오염된 짬뽕'에 다름 아니다. 조선족이 인육을 먹는다는 등 근거 없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박금남의 모습에서는 '일베'를 보는 듯 묘한 기시감마저 든다.
핍박받은 민중이 '없는 이'들을 조소하는 현실부자감세. 지난번 선거 때도 진근은 대뜸 그 정당을 위해 표를 꾹 눌러주었다. 손발 움직여 먹고사는 생산직이나 하루 품팔이 절반에 가까운 49.2퍼센트가 그이를 찍은 것만 봐도 없는 이들 일수록 부자 편이었다. 공연히 자발머리없는 인간들이 입만 까져가지고 민중이니 연대니 입바른 소리를 늘어놓지만 세상은 그렇게 움직여지는 게 아니었다.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집회현장에 촛불판매로 먹고사는 노점상 임진근에 이르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완전히 허무해진다. 정부의 노점탄압에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그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약자다. 그러나 진근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들을 비웃으며 세상을 움직이는 건 촛불이 아니라 돈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부자감세를 내세운 정당을 지지한다. 이처럼 작가는 사회로부터 핍박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없는 이들에 대해 조소하는 계급배반적인 민중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그의 소설 속에는 시장바닥 좌판에서 오고가는 억센 사투리와 가난한 이들의 어눌한 신세한탄, 욕망에 들끓는 말들이 뱀처럼 꾸물꾸물 살아 숨 쉰다.
맥없이 거리를 방황하기도 무엇하던 차에 재록은 생각지도 않았던 별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길바닥에 떨어진 한 장의 전단지에서 비롯되었다. 남자들 간깨나 빼먹게 생긴 젊은 처녀가 입었다기보다 벗었다 해야 할 차림으로 입을 비죽 내밀고 전단에는 '입으로 무엇이든 다 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입으로 다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다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알면서도 송재록은 친목회원의 딸 경미가 일하는 '쏭쏭키스방'으로 향한다. 그는 이발사 시절, 매출 때문에 아내의 퇴폐서비스를 모른 척 해야 했다.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 작가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 그 불편함을 증폭시킨다. 어느 문학평론가는 이시백 소설의 힘이 '민중서사를 지탱하는 구술성'에 있다고 평가했다.
해고노동자의 농성장은 이시백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