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입대하여 자대에 함께 배치된 동기와 함께 병장 초년 즈음에 찍은 사진(사진 오른쪽이 나다). 그야말로 세상 무서울 게 없던 때였다.
정은균
"선배님, 욕보십시요잉."대뜸 수화기 너머에서 "너 몇 학번이야?" 하는 말이 들려왔다. 무척 화가 난 목소리였다. 친절한 선배가 순식간에 돌변하니 나 또한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의 패기(?)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 학번 정은균입니다'라며 대들었다. 그러자 대번에 선배 목소리가 날카로운 화살처럼 날아왔다.
"너 당장 과 사무실로 튀어 와."이유를 알 도리가 없던 나는 화가 치밀 대로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선배라지만, 말년 제대한 육군 병장에게 '너'가 무언가. 주저하지 않고 학과 사무실로 달려갔다. 나는 '제대 병장'의 '강력한 아우라'를 내보이기 위해 전역 복장도 갖춰 입었다.
학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골이 장대한 선배 하나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의 선배였다. 애초에 통화할 때의 기세로는 2단 옆발차기가 날아올 듯했다. 그런데 "네가 정은균이야?"하며 묻는 말투에서는 전혀 그런 기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선배의 그런 모습에 내 마음도 한껏 누그러졌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사달이 '욕보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친절을 베푸는 선배에게 정감을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이, 서울 토박이였던 선배에게는 비아냥거리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욕보다'의 '욕'이 한자어 '辱(욕될 욕)'에 기원을 두고 있을 테니 그런 어감으로 받아들일 만하지 않았겠는가. 어쨌든 그때 이후로 그 선배와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한자말 '내일'의 우리말은 '아제'... 내일에 밀려 사라진 말얼마 전, '농부철학자'라는 독특한 직함(?)으로 유명한 윤구병 선생의 글(<한겨레> 2013년 5월 31일 자 특별 기고문 "말길이 바로잡혀야 한다")을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 일부를 인용해 본다. 흥미로운 질문도 있으니, 그 정답을 맞혀 보기 바란다.
'지금'의 우리말이 '이제'이고, 오늘보다 하루 앞선 날이 '어제'인 것을 모른다고 할 사람도 없겠지. 그러나 한자말 '내일'(來日)에 짓밟힌 우리말은 무엇이었을까?정답의 실마리는 이들 말의 모음에 있다. 현재를 나타내는 '이제'의 '이'는 중성 모음이다. 중성 모음은 어떤 특별한 음상(음의 이미지)이 없다. 과거를 나타내는 '어제'의 '어'는 음성 모음이다. 그 음상이나 어감이 크고 어둡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난 이를 '아른'이 아니라 '어른'이라고 부른다! '어른'은 '아이'들보다 크고 어둡지 않은가.
자, 이제 알 수 있겠는가. 인용문에 있는 질문의 정답은 '아제'다. 한자어 '내일(來日)'에 밀려 완벽하게 사라진 이 '아제'의 '아'는 양성 모음이다. 이것은 작고 귀엽고 밝은 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보다 뒤선 사람을 '아이'로 부른다. 윤구병 선생의 논리에 기대면, "때가 되지 못하였거나 미처 이르지 못하였음을 나타내는 말"인 '아직'의 '아'도 '아제'의 '아'와 형제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