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상담 받는 시민들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지원 및 서민의 과다채무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이 공식 출범한 3월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행복기금 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유성호
국민행복기금 출범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바꿔드림론에 대한 관심이 크다. 캠코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 출범 이후 최근 하루 평균 바꿔드림론 신청자가 최고 64%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바꿔드림론은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 상품을 연 8~12%의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서민금융제도이다.
카드론이나 저축은행 등의 이자율이 연 30% 전후이고 대부업 대출이 연 39%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 되는 금리다. 문제는 이런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하려면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4000만 원 이하의 소득자가 기존 대출을 6개월간 성실히 상환해야만 4000만 원까지 이용 가능하다.
금융위원회는 이 조건에 대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서민금융 부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사람들의 빚을 악성화시키고, 서민금융이 필요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등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서민금융의 비현실성남편과 사별 후 생계를 위해 보험영업을 하는 김씨는 바꿔드림론과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하려다 최근 포기했다. 그녀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그녀의 영업 소득은 월 약 200여만 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교육비 등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대학생 자녀에게는 스스로 아르바이트와 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으로 등록금을 마련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등학생 한 명에게 들어가는 등록금과 각종 참고서 비용, 두 아이의 용돈으로 소득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다. 남은 절반으로 영업에 필요한 비용과 생활비를 쓰니 매월 카드결제 비용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카드 돌려막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빚이 조금씩 늘었다. 정신차리고 계산해 보니 어느새 고금리 대부업체에게만 15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 신분의 영업직이기 때문에 신용이 높을 리 없다. 카드결제금 연체 공포 탓에 TV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대부업체에 전화 걸어 몇 번 대출을 받았다. 대부업체 대출을 이용하는 채무자들이 대개 그렇듯, 한 번 대출을 이용하면 고금리 이자 탓에 또 대출 받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씨도 처음에는 200만 원 가량 빌렸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금융비용 지출이 늘었다. 결국 생활비가 부족해졌다.
한두 달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이게 막히면 다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일이 반복됐다. 바꿔드림론을 이용해 이자 부담을 줄이려 서민금융제도의 문을 두드렸지만 본인 현실과 맞지 않는 조건이 문제였다. 6개월 이내 고금리 대출을 추가로 받은 적이 있으면 이용할 수 없다. 어떤 고금리 대출이든 적어도 6개월간 성실히 납부해야 이용 대상이 된다.
햇살론 쪽을 알아봤다. 이번엔 영업 소득에 비해 기존 대출이 과하다는 이유로 이용할 수 없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상담중 자주 만난다. 고금리 신용대출 4000만 원을 이용한 어느 맞벌이 가정이 있다. 남편 회사 임금 체불로 생긴 빚 탓에 서민금융 문을 두드렸다. 매월 금융비용 지출이 150여만 원, 부부 맞벌이 소득이 월 400여만 원이기 때문에 이자율만 낮으면 부채 상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도 '6개월 룰'에 걸리고 또 소득도 높아 이용이 불가능했다.
저소득이면서 대부업체 대출을 잘 갚으라고?결국 소득은 낮고 고금리 대출을 잘 갚는 사람만 바꿔드림론이나 햇살론을 이용할 수 있다. 생활비가 부족해 고금리 대출을 쓸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중에서 살인적인 고금리를 잘 갚는 사람만 골라 금리를 낮춰주겠다는 이야기다. 언뜻 서민금융 기금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조처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설계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