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규 의원
이민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니까…. 가정통신문에 있는 아버지 학력난을 채워야 하는데, 사실 그대로 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요. 집 사람은 대학을 나왔는데…. 참 난감하더라고요. 이게 느지막하게 공부를 시작한 결정적 계기지요. 물론, 단 한 번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적은 없었어요. 늘 갈증을 느끼고 있었지요."
경기도 의회 최우규 의원이 지난 95년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이유다. 지난 5월 27일 오전 10시경, 안양시청 4층에 있는 도의원 연락 사무소에서 최우규 의원을 만났다. '초선의원 지방정치 경험담'을 듣기 위한 만남이었는데, 엉뚱하게도 대화 초기에 잠시 한담처럼 나눈 '살아온 이야기'에 꽂히고 말았다. 이유는? 흥미롭기 때문이다.
소년 최우규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일찌감치 학업을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삼십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검정고시에 도전하게 된다. 그의 공부 실력은 놀라웠다. 단 1년만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논스톱 패스했다. 나이 먹고 공부를 하니, 어렸을 때 보다 훨씬 쉬웠다고 한다. 나이를 먹고 공부하면 굉장히 힘들다는 '일반적 사실'을 뒤집는 놀라운 발언 이었다. 아니, 그 보다는 새롭고 놀라운 '학설'이라고 해야 하나.
"옛날에는 이해가 안 가던 게 나이를 먹고 하니까 쉽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그렇게 어렵던 구구단 8단이 6학년 때 하면 참 쉬운 것과 같은 원리죠.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하니까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어요. 어떤 책을 보던 이해가 참 빨랐어요. 그래서 내친김에 그 이듬해인 96년도에 대학에 입학했고,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가게 된 거죠.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농담 반 진담 반 '인간승리'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 쭉 공부를 해서 그는 2002년에 석사학위, 2005년에 박사 학위(경제학)를 받았다. 2002년,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부터는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가정 통신문에 있는 학부모 학력난이 두려워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단 7년 만에 대학 강단에 섰으니, 그야말로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 이후 그의 직업은 지난 2010년 경기도의원에 당선 될 때까지 쭉 대학 교수였다.
이 정도면 '인간승리'라고 할 만 한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엄청난 에너지가 나왔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 묻다보니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을 다 하자'라는 그의 좌우명이 귀에 딱 걸렸다.
"좌우명이 있기는 한데, 글로 써서 벽에 걸어 놓은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늘 이 말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애들 이름도 큰애는 '선' 둘째는 '다해' 셋째는 '하라'입니다. 제 성을 앞에 붙여 놓으면 '최선을 다해 하라'이지요. 저는 무슨 일을 하던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늘 아쉬움은 남지만,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 했는데도 늘 아쉬움은 남지요. 왜 공부를 좀 더 일찍 시작 하지 못했을까, 정치를 왜 좀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지요." 도의원 권한,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데 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