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안기종
2001년 6월 27일 한국에서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던 '글리벡'이 출시되면서 골수이식을 받지 않으면 5~6년 이내 대부분 사망했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생존기간이 획기적으로 연장됐다.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는 표적항암제인 '글리벡'만 먹어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90% 이상이 5년 이상 장기생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리벡 앞에 '기적의 항암제'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글리벡 10% 환자 지원 프로그램' 중단 2005년 8월 31일까지는 글리벡 처방을 받으면 약값의 20%를 지불하고 나중에 노바티스로부터 10%를 환급받았다. 그러다가 2005년 9월 1일부터 백혈병을 포함한 암환자의 본인부담금이 기존 20%에서 10%로 인하되면서 글리벡 약값의 10%를 지불하고 나중에 노바티스로부터 10%를 환급받았다. 결과적으로 무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혜택은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제조사인 '노바티스'가 2003년 2월 1일부터 글리벡 약제비 중에서 환자 본인부담금 10%를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지원하는 제도(이하,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를 시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바티스 지원 끊기면 무슨 일이? |
백혈병 환자는 1알이 100mg인 글리벡을 하루 4알에서 8알 복용한다. 글리벡 한알 가격은 21,281원이니까 하루 약값은 85,124원에서 170,248원이다. 한달이면 2,553,720원에서 5,107,440원이다. 이 중에서 백혈병환자는 5%(건강보험공단은 95%)를 부담하니까 한달 127,696원에서 255,372원을 지불하게 된다. 이 금액은 노바티스로부터 받아왔다. 그런데 올해 6월 3일 글리벡 특허기간이 만료되어 '환자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되면 백혈병 환자들은 매달 127,696원에서 255,372원을 고스란히 지불하게 된다.
연간 천억원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 항암제 '글리벡'의 특허가 만료되었으니 30여개의 복제약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약인 글리벡과 복제약의 약값차이가 24.44%에 불과하고, 우리나라는 복제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고, 생명과 직결된 백혈병 치료 항암제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그동안 글리벡을 복용해왔던 환자 중에서 복제약으로 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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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3년 6월 3일이 되면 글리벡의 특허기간이 만료되어 30여개의 복제약이 출시된다. 지금까지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가 글리벡 하나뿐이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복제약이 출시되면 노바티스만 약제비를 지원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가 된다. 앞으로는 불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노바티스는 지난 5월 13일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실을 방문해 7월부터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된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백혈병환우회는 공정거래법상 환자에게 직접 약값을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노바티스가 재단법인을 설립하거나 다른 공익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를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이 없는지 문의했다. 이에 대해 노바티스는 특허기간 만료시 글리벡 약가가 30% 인하되어 수익이 크게 감소하고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글리벡 가격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사회에 환원할 여력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번에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부분은 2013년 6월 3일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급성림프구성백혈병, 만성호산구성백혈병, 과호산구성증후군, 만성골수단핵구성백혈병, 만성골수성질환, 융기성피부섬유육종 총 7개 질환(3000여명)이고 2021년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위장관기질종양(GIST, 1500여명)은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바티스의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은 백혈병 환자들이 2001년 5월부터 2003년 2월까지 1년 6개월간의 목숨을 건 약가 인하 싸움을 벌이던 중에 만들어졌다.
노바티스는 백혈병을 포함한 암 환자의 본인부담율이 10%에서 5%로 인하된 2009년 12월 1일부터 특허가 종료되는 2013년 6월 3일까지 매년 글리벡 총 매출액의 5%를 추가수익으로 얻고 있으며 2013년 6월 3일부터 특허기간 만료로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하면 또 매년 글리벡 총 매출액의 5%를 추가수익으로 얻게 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매년 약 60억 원~1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됨에 따라 환자 본인부담율(10%→5%)이 줄었거나 특허 종료로 공정거래법상 환자에게 지원이 불가능하게 되었더라도 노바티스는 글리벡 10% 지원금을 수익으로 가져가면 안 되고 건강보험공단에 돌려주어야 한다.
이 말 뜻을 이해하려면 10년 전으로 돌아가 1년 6개월간 진행된 글리벡 약가싸움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1년 6개월 간의 '글리벡' 약가싸움글리벡은 탁월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한 달에 300~600만 원이나 하는 약가였다. 일 년이면 3600만 원~7200만 원이다. 글리벡은 평생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 글리벡은 '기적의 항암제'였지만 돈이 없는 환자에게는 '절망의 항암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백혈병 환자들은 온라인으로 보건복지부, 청와대,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등에 글리벡을 먹게 해달라고 탄원했고, 오프라인으로 '한국만성백혈병환우회'를 조직해 적극적인 약가싸움을 시작했다.
2002년 1월 29일에는 특허청에 글리벡 강제실시를 청구했고, 2002년 3월 19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2002년 3월 26일에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2002년 8월 5일에는 글리벡 복제약 '비낫' 수입을 위해 인도 제약회사를 방문했다. 이어 2003년 1월 23일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를 시작해 2월 10일까지 총 18일 동안 생명을 건 농성을 했다. 이외에도 1년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기자회견, 집회, 1인시위, 기고, 간담회, 토론회 등 글리벡 약가인하를 위해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대부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