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미 강사강영미 강사
이미선
굴곡 많은 40대.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그보다 더 깊은 난관과 시련으로 가득했다고. 장애를 이기고 이제는 제2의 인생으로 힘껏 전진하고 있는 강영미(45·태안읍 동문리·지체4급)씨. 그녀를 지난 14일(화)에 만났다.
누가 그녀를 한 떨기 여린 꽃이라 했는가. 누가 장애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통로라 했는가.누구보다 자신을 믿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그녀의 일상은 어느 여름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하는 것처럼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우리 일상이 그렇듯,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렇게 자연과 동화돼가는 하루하루가 인생이고, 그게 바로 삶이다.
대전이 고향이었지만 할머니 댁인 이곳 태안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영미씨는 친구들의 괄시와 홀대를 견디지 못하고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 다시 대전으로 떠났다. 당시에는 시골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힘든 곳이었다며 끔찍했던 유년시절을 떠올린다.
3살 때부터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다는 영미씨"어릴 때는 친구들이 놀리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울기도 많이 했고요."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영미씨의 장애와 세상의 편견은 그녀를 더없이 힘들게 했지만 인고라는 숭고한 진리를 그녀는 나이를 먹어가며 자연스레 습득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런 영미씨의 일터는 태안군장애인복지관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컴퓨터와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제는 평범한 강사를 넘어 후배양성에까지 손을 뻗고 있는 어엿한 실력파 강사다.
영미씨가 장애인들을 가르치기 시작한건 장애인복지관이 생기기도 한참 전인 2003년 당시에는 방문강사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8개 읍·면에서 1·2급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으로 컴퓨터를 가르쳤다고. 그랬던 제자들이 이제는 원북면과 이원면, 태안읍을 제외한 5개 읍·면에 행정도우미로 배치돼 더 큰 보람을 느낀다는데.
"일반강사들에게는 없는 게 저에게는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꿈과 발이죠. 제가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을 그들과 소통하며 수업한다는 게 오히려 저에게는 득이 됐으니까요."현실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자는 매사 긍정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자라는 진리를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땄던 것 같아요."몸에 대한 갈증을 그녀는 자격증으로 풀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장애인도 자격증 하나면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그녀의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자격증 공부다. 컴퓨터 워드, 액셀, 파워포인트, 인터넷 등을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영양사, 미용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도전은 하나같이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길 10년. 이제는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몇 해 전 장애인복지관 설립과 함께 이곳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장애학생들의 컴퓨터 강의를 전담하고 있고, 또 작년부터는 매주 2번, 4시간에 걸쳐 장애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이 재활치료를 위해 이곳(복지관)을 찾으시는데, 어느 날인가는 화장실을 가려다 재활치료를 하고 계신 한 여성분을 만나 컴퓨터 배우길 권유한 적이 있어요. 이분이 점차 컴퓨터에 흥미를 느끼시더니 2009년부터 방문강사를 시작해 2011년에는 서산시장애인복지관에서 저처럼 컴퓨터강사를 하고 계세요. 이정희(52) 강사 얘기에요. 지금은 저와 함께 워크숍도 다니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