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섶에 맺힌 보석보다 예쁜 비이슬

[포토] 비이슬

등록 2013.05.20 10:52수정 2013.05.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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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슬 딸기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 ⓒ 김민수


봄비, 단비가 내렸습니다. 짧은 봄 뒤로하고 여름으로 치닫는가 싶었던 날씨도 잠시 봄의 날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봄가뭄이 오는 게 아닌가 우려를 했는데 마침 단비가 내려 모내기준비를 하는 논도 자작자작 물이 찼습니다.


비이슬 둥굴레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 ⓒ 김민수


참으로 고마운 단비, 봄비입니다. 풀섶에 서니 여기저기 보석보다도 아름다운 비이슬이 맺혔습니다. 풀마다 맺힌 비이슬에 무겁다고 하면서도 그들과 어우러져 생명의 잔치를 벌입니다.

저마다 자기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더불어 사는 것, 그것이 무위자연의 삶입니다.

비이슬 둥굴레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 ⓒ 김민수


'무위'는 누구를 위한다는 의지없이도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가리켜 '성인'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 세상엔 자기의 삶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누구를 위해 살겠다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말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이 권력을 잡고 힘이 생기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비이슬 비이슬에 맺힌 연산홍의 붉은 빛 ⓒ 김민수


맑아서 주변의 색깔들을 담아내는 이슬입니다. 맑지 않으면 오로지 자신의 색깔을 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맑은 척해도 이내 자기 안에 품은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비이슬 연산홍의 꽃술에 매달린 비이슬 ⓒ 김민수


퇴촌은 서울보다 봄이 약간 늦습니다. 그런데 약간 늦은 봄 덕분에 서울에서는 다 진 꽃들도 이곳에선 마날 수 있습니다. 여름으로 가는 듯하여 서운했던 봄, 그 봄기운이 단비에 붙잡혀 그곳엔 많이 남아있습니다.

봄이 늦는다고 했더니만, 늦었으므로 봄이 남아있으니 이 또한 고마운 일입니다.


비이슬 연산홍의 꽃술에 달린 비이슬 ⓒ 김민수


우리의 역사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안 올 것 같던 봄이 갑자기 찾아오더니만,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짓밟혀 버렸습니다. 그것으로 아주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봄이 찾아왔지요. 그때부터는 이제 꽃 피울 줄 알았는데 다시 혹독한 겨울, 그리고 봄... 계절의 혼재.

그러나 언젠가는 이런 과정들을 다 겪고나서 온전하게 피어나는 봄이 있겠지요.

비이슬 둥굴레 이파리에 앉은 비이슬 ⓒ 김민수


그리고 어떤 날은 단비가 내려 더 아름다운 풀섶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삶뿐 아니라 역사도 그렇게 빛나는 날이 있겠지요.

비이슬 나뭇잎에 맺힌 비이슬 ⓒ 김민수


강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길도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나뭇잎 속에 들어있는 실핏줄 같은 잎맥도 강이고 길입니다. 저 작은 것이 이파리를 이루고, 커다란 나무를 이루듯 작은 사람들 하나하나 피어나 우리네 역사를 피워낼 수 있는 그 날, 그 날은 올 것입니다.

비이슬 강아지풀에 맺힌 비이슬 ⓒ 김민수


지난 가을 씨앗들을 다 떨구고 말라버린 것도 모자라 겨우내 모진 추위 속에서 겨우 형체만 남았던 강아지풀입니다.

그의 삶, 다 끝났는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가는 것들 혹은 노년의 삶 혹은 마지막 삶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비이슬 강아지풀에 맺힌 비이슬 ⓒ 김민수


그냥 그것이 끝이 아니구나!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그것이 끝이 아니구나!

오랫만에 내린 단비, 소낙비처럼 요란하게 내리지 않아 작은 풀섶에 송글송글 비이슬을 남겨두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런 단비같은 비가 우리의 삶에도 내려, 더러운 먼지같은 찌끼들을 씻어내고 보석보다 아름다운 비이슬같은 것을 맺히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런 날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비이슬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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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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