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열심히 넣었어요, 딸이 죽을 땐 몰랐죠"

[현장] 15일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국회의원 간담회

등록 2013.05.15 18:54수정 2013.05.1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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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신지숙씨(맨 오른쪽) 등이 15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피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질환을 앓고 있는 신씨는 휠체어와 산소튜브의 도움을 받아아먄 겨우 숨을 쉴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신지숙씨(맨 오른쪽) 등이 15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피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질환을 앓고 있는 신씨는 휠체어와 산소튜브의 도움을 받아아먄 겨우 숨을 쉴 수 있다.남소연

"휠체어와 산소호흡기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무슨 일로 국회에 왔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피해, 당연히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어요. 저는 '당연하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안되니까,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국회에 온 거 아니겠어요."

신지숙(35)씨는 2011년 5월 폐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병원에서는 '원인불명 폐질환'이라며 폐이식을 권유했다. 몸이 약해서 이식은 힘들었다.

그후 정부의 공식 발표를 통해 '원인 불명'을 알게 됐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가 딱딱하게 굳어졌던 것이다. 2년이 지난 현재, 신씨의 폐는 일반인의 21%밖에 작동하지 않는다. 투명한 산소튜브가 신씨의 호흡을 돕고 있다.

살균제 피해자 "내 아이와 남편도 이상 없는지 검사해 달라"

신씨는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석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신계륜 위원장(민주당)과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장하나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등이 피해자들의 현실을 듣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2013년 5월 현재 신씨와 같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총 401명으로, 그중 31.6%에 해당하는 127명이 숨졌다. 신씨는 "그나마 죽지 않고 살아서 사랑하는 딸이랑 살 수 있어서 고맙다"고 울먹였다. 그리고 "딸과 남편도 폐에 손상이 없는지 검사 비용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가습기 살균제 열심히 넣었어요. 자다가도 아내가 살균제 안 넣었다고 하면 깨서 꼬박꼬박 넣었죠. 딸 아이가 죽었을 때는 몰랐어요. 지나고 보니까 내가 내 아이 코에 이 살균제를 넣은 것이었어요."


백승목(41)씨는 2006년 3살된 딸을 잃었다. 감기로 시작된 딸의 병명은 천식에 이어 폐렴, 그리고 폐섬유화로 이어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공론화 됐어도 그는 덮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 백씨는 "우리나라는 나름 민주화된 선진국 아닌가"라며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 안전을 생각해준다면 덮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산소튜브를 낀 임성준(11)군을 비롯해 아내를 잃은 최승영(42)씨 등 8명의 피해자와 유족들이 자리했다. 최승영씨는 "애 엄마가 죽었을 때는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며 "아내가 죽고나서 1년 동안 울고 지냈다"며 눈물을 흘렸다. 간담회 테이블에는 시중에서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가 놓여 있었다.

너무 더딘 정부의 대책

정부는 2011년 8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폐 섬유화'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역학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피해자 보상대책은 세우지 않았다. 지난 6일에는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를 재개한다고 밝혔지만 피해자 지원방안은 전무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국회에 건의사항을 전달하며 "이 사건은 사망자만 100명이 넘는 초유의 사건"이라며 "국민 안전과 행복 추구를 국정의 모토로 삼는 박근혜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피해자 지원 대책 ▲ 제품 제조 업체 책임 규명 ▲ 환경피해보상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신계륜 위원장은 "피해 사례를 직접 듣기로는 처음"이라며 "환노위에서 적극 법 제정을 통해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장하나 의원은 "400여 명의 피해자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여기까지 왔는데도 정부가 손을 안대고 우물쭈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가습기 살균제 #장하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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