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 더운 발 식히는 계절, 이 길이 딱이네

[양평 물소리길 1코스] 수도권 전철 양수역에서 국수역까지 이어지는 길

등록 2013.05.16 11:41수정 2013.05.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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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고 풋풋한 개천이 들머리로 등장하는 양평 물소리길 1코스
맑고 풋풋한 개천이 들머리로 등장하는 양평 물소리길 1코스김종성

지난달에 탄생한 핫플레이스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물소리길이다. 물소리길은 두 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옛길, 고갯길, 숲길, 남한강 강변길, 농로, 마을길, 옛 철도 터널, 자전거길 등이 어우러져 고향을 찾아 떠나는 아득한 여정으로 손색이 없다. 물소리길을 만들기 위해 인공적인 작업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사람 사는 그대로의 모습의 정취를 살린 여행길이다. 제주 올레길을 만든 '사단법인 제주 올레'의 작품답다.

출발과 도착 기점이 모두 중앙선 전철과 연결되어 있어 교통편도 좋다. 지난번의 물소리길 2코스 여행에 이어 이번엔 1코스를 여행했다. 수도권 전철 중앙선 양수역에서 정창손묘~부용리, 논두렁길~부용산, 숲길~부용산, 약수터~몽양, 여운형 기념관~신원역~남한강변~양서초등학교~기차터널을 거쳐 국수역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정겨운 양수리 오일장, 예쁜 전원마을 용담마을

양평 물소리길 1코스를 걷고자 한다면 매 1일, 6일에 찾아가면 더 좋겠다. 양수역이 있는 마을 양수리에 작은 오일장이 열리기 때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유명한 명소 두물머리, 물의 공원 세미원 등이 있어서 마을 강변에는 '물레길'이 생겨날 정도다. 양수역에서 강변 산책로를 따라 양수리 오일장터를 찾아간 건 손수레에 뻥튀기 기계를 싣고 곡물을 튀겨내던 연로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올라서였다.

양평 물소리길 2코스에 있는 양평 오일장에 비하면 동생뻘정도인 작은 장터지만 주민이 동네 뒷산에서 캐온 각종 봄나물을 만날 수 있다. 아쉽게도 뻥튀기 손수레의 주인은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로 바뀌었다. 터프한 인상에 어울리게 대포처럼 큰 소리로 뻥튀기를 튀겨내는 아저씨는 놀랍게도 전에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몸이 아파서 이제 오일장터에 못 나오신다는 할아버지, 부디 건강하시길 바란다.

 터프한 인상의 아저씨답게 뻥튀기 기계 소리가 작은 오일장터를 뒤흔든다.
터프한 인상의 아저씨답게 뻥튀기 기계 소리가 작은 오일장터를 뒤흔든다.김종성

 파들이 쑥쑥 자라는 전원적인 풍경과 새로 지은 예쁜 집들이 이채롭다.
파들이 쑥쑥 자라는 전원적인 풍경과 새로 지은 예쁜 집들이 이채롭다. 김종성

작은 물고기들이 새처럼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맑은 개천을 지나 용담마을로 들어서면 이제 본격적인 물소리길이다. 봄볕을 자양분삼아 쑥쑥 자라는 파밭 너머로 예쁘게 지은 집들이 보인다. 마당에는 알록달록한 꽃들을 심어놓은 전원주택들이 많다. 

눈이 시원해지는 초록으로 물든 밭에 할머니들 서너 분이 모여서 들일을 하고 있다. 딸 대신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따가운 봄 햇살 아래 허리 구부리고 일하시는 할머니들. 제주의 바다에서, 양평의 밭에서 힘들게 일하는 건 늘 여자의 몫이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보다 허리 굽은 외할머니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가 보다.  


시골에 들어섰음을 제대로 알려주는 건 동네 개들. 사람보다 수백 배 냄새를 잘 맡는다는 개는 귀도 밝은가 보다. 멀리 떨어진 어느 집 개가 여행자의 발소리를 듣고 짖기 시작하더니 동네 개들이 신호를 주고받듯이 합창을 한다. 물소리길이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면 얘들도 외지인들에게 익숙해지겠지.

 목마른 여행자에게 들어오라며 시원한 물을 주신 할머니 감사합니다.
목마른 여행자에게 들어오라며 시원한 물을 주신 할머니 감사합니다. 김종성

때 른 초여름 날씨에 벌컥벌컥 물을 마시다 보니 그만 물통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길가의 어느 집 대문이 반쯤 열려 있어 고개를 들이 밀다가 마당 안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 두 분과 눈이 마주쳤다. 열린 문처럼 마음이 넓은 할머니는 목마른 여행자에게 기꺼이 시원한 물을 건네주셨다.


요즘 저 같은 외지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불편하지는 않으냐고 여쭤보니 십 년만 젊었으면 장사했을 텐데 오히려 아쉬워하신다. 얼마 후에 다시 찾아간 이 길 마을 어귀 집 앞에서 '무한리필' 호박 식혜며 묵, 파전 등을 파는 동네 주민 아주머니와 마주치기도 했었다. 

시원한 계곡물, 약수터, 악착 날벌레가 공존하는 부용산 숲길

 마을길을 지나 처음으로 숲에 들어서는 길, 하늘색 리본이 잘 안내해준다.
마을길을 지나 처음으로 숲에 들어서는 길, 하늘색 리본이 잘 안내해준다. 김종성

해발 336m의 아담한 부용산(芙蓉山)은 산을 품은 마을 부용리. 부용은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나무가 많은 흙산이라더니, 정말 느리게 걷기 참 좋은 산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숲길 위로 간간이 지나가는 도보 여행자들과 숲 속 오솔길을 걸어갔다. 공기가 잘 통하도록 적당히 우거진 수목들이 내려주는 그늘이 여름 같은 봄 햇살로부터 내내 가려주었다.

갈림길이나 길목마다 물소리길의 가이드 하늘색 리본이 봄바람에 살랑거린다. 마을길과 달리 숲 속 길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숲길에 피어난 색색의 예쁜 들꽃들에 눈길을 주다가, 숲 속 오솔길에서 그만 상념에 푹 빠져 걷다 보면 하늘색 리본이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땐 리본을 찾아 앞으로 더 가거나 주변을 헤매지 말고 무조건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오면 된다. 곧 너~무 반가운 하늘색 리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을길, 숲길에서 마주치는 예쁜 들꽃들과의 만남도 큰 즐거움이다.
마을길, 숲길에서 마주치는 예쁜 들꽃들과의 만남도 큰 즐거움이다. 김종성

 눈부시게 화사한 오월의 신록사이를 걷는 마을 길.
눈부시게 화사한 오월의 신록사이를 걷는 마을 길. 김종성

얼마 후 물소리길의 안내자 하늘색 리본만큼이나 반가운 것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산기슭의 아담한 계곡. 평평한 돌 위에 철퍼덕 앉아 맨발을 계곡에 담그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아직 그런 이름은 따로 없지만, 양평 물소리길 여행자의 공식 쉼터가 될 것 같다. 얼마 후에 나타나는 숲 속의 옹달샘 같은 작은 부용산 약수터, 남한강 강변길과 함께 양평 물소리길에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물소리길'이 비로소 실감났던 작은 계곡가에서의 시원한 휴식시간
'물소리길'이 비로소 실감났던 작은 계곡가에서의 시원한 휴식시간김종성

그늘 많고 험하지 않은 부드러운 숲길, 시원한 계곡물, 단비 같은 숲 속 약수터. 자연이란 참 쾌적하고 마치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순간, 이 착각을 깨준 건 모기 소리를 내며 땀이 찬 내 얼굴 주위를 끈질기게 날아다니는 작은 날벌레들이었다. 예쁜 들꽃을 사진으로 담으려 잠시 걸음을 멈추기라도 하면 며칠 배곯은 하이에나들처럼 달려들어 하는 수 없이 계속 걷게 된다.

 숲속에서 만난 단비같은 부용산 약수터, 양평 물소리길의 공식 지정 약수물이다.
숲속에서 만난 단비같은 부용산 약수터, 양평 물소리길의 공식 지정 약수물이다.김종성

 부용산 숲길을 나오면 마주치게 되는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
부용산 숲길을 나오면 마주치게 되는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김종성

손으로 내젓고 입으로 헛바람을 불어대며 쫓아내도 그때뿐. 어찌나 악착같이 따라오는지, 여기서 잠깐 낮잠이라도 자게 되면 아마 얘네들이 몇 시간 내에 날 분해해 흙으로 돌아가게 해 줄 듯싶다. 사실 자연(自然)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인 선도 악도 아닌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일 뿐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부용산 둘레길 중간 중간에 정창손묘(조선 세조 때의 문신),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문신 한음 이덕형의 묘,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자 해방 후 남북 통일운동을 했던 정치인 몽양 여운형의 생가 기념관을 지난다. 모두가 이 물소리길 부근이 고향인 분들이다. 여운형 생가 기념관 앞 돌에 새겨진 그의 어록들이 눈에 띈다.

나는, 청년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무릇 청년은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불 가슴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취 있는 남한강변길, 기차 터널 길 걷기 

 물소리길의 후반부는 눈 시원한 강변길이 이어진다.
물소리길의 후반부는 눈 시원한 강변길이 이어진다. 김종성

완만한 내리막의 숲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는데 저 앞 가까이에서 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강가 가까이에 있는 중앙선 전철역인 신원역에 다다른 것이다. 길은 양평 물소리길 1코스의 마무리 격인 남한 강변길로 이어진다. 자전거도로 옆 보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자전거도로와 떨어져서 강변길을 걸을 수 있다.

숲길처럼 그늘이 없어 좀 덥다 싶을 때 양평 물소리길의 백미인 기차 터널길이 나타난다. 중앙선 기차노선이 폐선 되면서 없애지 않고 살린 이채로운 길이다. 산허리를 뚫은 동굴이다 보니 한여름에도 에어컨 켠 듯 서늘하다. 덕분에 등에 찬 땀과 몸의 열기가 시원하게 사라졌다.

 서늘한 터널 속을 걷는 동안 땀과 열기가 기분좋게 식는다.
서늘한 터널 속을 걷는 동안 땀과 열기가 기분좋게 식는다. 김종성

재미있는 이름의 굴렁쇠 휴게소에 도착해 초콜릿을 사 먹으며 대여섯 시간을 내리 걷느라 풀린 다리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햇볕은 한결 부드럽게 얼굴에 닿고 남한강은 더욱 아늑하게 흘러간다. 사람 사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길을 걸어서인지 장딴지는 좀 아프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 온몸에 스며든다. 휴게소 너머에 양평 물소리길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출발지인 중앙선 전철 국수역이 기다리고 있다.

 마을길, 그늘 많은 숲길, 시원한 계곡, 강변길이 이어지는 양평 물소리길.
마을길, 그늘 많은 숲길, 시원한 계곡, 강변길이 이어지는 양평 물소리길.김종성

덧붙이는 글 5월 11일에 다녀 왔습니다.
#양평 물소리길 #양수리 오일장 #부용산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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