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정책 전문가 이상민 비서관. 이 비서관이 최근 내놓은 숨은 세원 찾기 시리즈는 정부가 실제 정책에 반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가 어렵게 만든 자료들은 많은 기사에 출처 없이 떠돌고 있다. 김재연 의원이 1년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으로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연 의원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전적으로 이 비서관의 결정이었다.
남소연
"농사를 재밌게 짓고 있는데, 참여연대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여의도 갈래?'라고 묻더라고요. 제 첫 마디는 '미쳤어요?'였어요. 그 선배가 '이정희 의원실 보좌관인데…'라고 하니,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때 만해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진보의 아이유'라고 불렸잖아요. 고민 끝에 보좌관이 됐죠."이상민 비서관(38,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실)은 담담히 2010년 국회 입성기를 털어놓았다. 당시 이정희 의원실에서 참여연대 쪽에 조세정책 전문가 섭외를 요청했고,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경제개혁센터에서 활동한 이상민 비서관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다. 이로써 이 비서관은 일반 회사 →참여연대→농사에 이어 4번째 직업을 가지게 됐다.
국회 이정희 의원실로 출근한 이상민 비서관은 "2012년 18대 국회가 끝나고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농사꾼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적응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텐데, 다시 돌아갈 계획부터 세운 것이다. 이 비서관은 "일하는 환경이 좋았다, 참여연대와 비교해 자료접근권이 좋았다"면서 "그날 점심 때 떠오른 아이디어로 그날 법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그의 호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18대 국회에서 사상 최초로 통과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법안(상속세·증여세법 개정안)은 이상민 비서관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이정희 의원과 함께 낸 법안이 정부안과 묶여 입법화된 것이다. 앞서 그가 실무를 맡았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2005년 처음으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개념을 세웠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비서관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법안의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이 비서관이 최근 내놓은 숨은 세원 찾기 시리즈 역시 정부가 이를 받아 실제 정책에 반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가 어렵게 만든 자료들은 많은 기사에 출처 없이 떠돌고 있다. 김재연 의원이 1년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으로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연 의원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전적으로 이 비서관의 결정이었다.
지인들이 그를 말렸다. 이 비서관은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뽑힌 김재연 의원은 억울한 면이 있다"며 "이를 정책으로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부터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 보좌관으로 평가 받는 손낙구 보좌관(민주당 최원식 의원실)이 말했다. "김재연 의원실에 선수가 있다"고. 9일 오후 '선수' 이 비서관과 마주 앉았다.
[좌충우돌① : 참여연대 간사→농사꾼] "보슬보슬한 흙 만지면 기분 좋아요" 이상민 비서관의 인생항로는 '좌충우돌'이다. 그가 잡은 전공서적만 해도 정치학과 기초·응용과학을 넘나든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 96학번으로 한 대학의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화학 학사학위를 땄다. 미국으로 건너가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다가, 중도에 귀국했다. 국내에선 NGO대학원에 다녔다. 지금 하는 일은 경제 영역이다. "꼬였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고에 큰 도움이 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민운동의 꿈을 가지고 있던 이 비서관은 2004년 참여연대에 들어갔다. 반부패 사업을 하는 투명사업팀에 배치됐다가 곧 다른 팀으로 옮겼다. 이 비서관은 "부패 감수성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났다"고 웃음을 지었다. 자리를 옮긴 곳은 경제개혁센터·조세개혁센터였다. 이 비서관은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했다. '재벌 저격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필두로 한 쟁쟁한 멤버들과 한 팀이 돼,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처음으로 참여연대에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이 비서관은 "참여연대는 일감 몰아주기를 의제화 했다는 차원을 뛰어넘어,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며 뿌듯함을 나타냈다. 이 비서관은 삼성 같은 재벌·대기업과 대립 각을 세웠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할 때, 시민사회단체와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만든 공동대책위원회 실무를 맡았다. 2008년 촛불시위 때 광우병 대책위 상황실장이었던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돼,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이 비서관은 2009년 갑작스레 참여연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당초 세법과 회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참여연대를 나왔지만, 공부하다가 갑작스럽게 농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 용인시에 1만6500㎡(5000평) 크기의 땅과 20개가 넘는 하우스시설을 빌렸다. 동업자와 5000만 원씩 투자했다.
농사꾼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농사로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서 "주말농장을 분양한 뒤, 분양받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듯이 주말농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리얼팜'이라고 이름붙인 이 사업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상추 농사를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하루 상추 100박스를 중간업자에게 납품했다. 4kg짜리 1박스가 8000원이면, 월급쟁이 벌이 정도는 됐다. 하지만 3000원까지 내려가 하루에 수백만 원의 손해를 볼 때가 있다. 반대로 7만 원까지 올라가면, 하루에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번다. 상추 가격은 주가보다 더한 '롤러코스터'였다. 그래도 농사를 짓는 게 재밌었다. 밭을 갈아, 보슬보슬한 부드러운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았다."[좌충우돌② : 농사꾼→국회 보좌관] "MB 최대 치적은 이정희 의원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