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 사과의 뜻을 표명하며 절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록 '사고'로 가해 사실이 드러나기는 했으나, 배후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권력자들의 악행이 은폐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워싱턴DC 소재 주미 한국 문화원은 성추행 사건을 파악하고도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가해자와 함께 피해자를 찾아가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청와대가 가해자를 서둘러 귀국시킨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청와대는 여론이 심각해지기 전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도리어 가해자가 거짓과 변명으로 가득한 '기자회견'을 하게 내버려 뒀다. 그런 뒤 귀국을 종용했느니 안 했으니, 팬티를 입었느니 안 입었느니 하며 가해자와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청와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내용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느 누구라도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주문했다. 그리고 '윤창중 재발방지 매뉴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거라곤 '이번 일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기 뿐이다. '재발방지 매뉴얼'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정말 이번 사건의 원인이 '매뉴얼'이 없어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일까?
그렇다면 '윤창중 재발방지 매뉴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성공하라'고 인턴을 격려할 때는 손의 위치를 조심하라"? "아무리 바빠도 문을 열 때 최소한 팬티는 챙겨 입어라"? 당사자 윤창중은 기자회견에서 "여자가이드의 허리를 툭 한차례 쳤을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물론 윤창중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
"미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그 가이드에게 이 자리에서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겠다." 그렇다면 매뉴얼에 이런 내용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는 여자를 허락 없이 만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굳이 이런 내용을 문서로 만들어 훈련시켜야 하는 존재라면 청와대 고위직보다 동물원에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윤창중 전 대변인은 자신이 해야 할 것이 '위로'가 아니라 '사과'라는 점도 배울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를 비교적 잘 아는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성을 허락 없이 만져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강자가 약자의 생존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의 크기와 그런 착취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보장되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윤창중이 성추행을 저지른 것은 자신의 행동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희생자가 자신의 악행을 '감히' 드러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자의 생존권과 내부 고발자의 신변이 보호되지 않는 한, '행동지침 매뉴얼'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분량으로 펴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윤창중은 청와대 대변인에서 '한국문화'의 대변인으로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
윤창중의 공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