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서평]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이 쓴 <나는 시민기자다>

등록 2013.05.08 11:10수정 2013.05.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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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대표 문구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모니터로 보이는 '정은균 기자'라는 표현 또한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다. 가끔씩 내 휴대전화에 찍히는,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대표 전화 번호인 '02-733-5505'는 심지어 친숙한 느낌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정식으로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한 지 고작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요즘 나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이 인터넷 매체와 아주 오래전부터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던 느낌이 든다. 어인 까닭에서일까.

오 년 전쯤, 나는 국어국문학과 관련된 한 학회지에 논문 한 편을 투고한 적이 있었다. 내 나름대로는 그 논문에 꽤 공력을 들인 터라 심사 과정을 무난히 통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수정 보완 판정이 나왔다. 몇몇 용어의 개념이 불명확하고, 전체적인 글 구성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망스러웠지만 할 수 없었다. 몇 주에 걸쳐서 글을 손질해 다시 보냈다.


그런데 또 수정 보완 판정이 나왔다. 이번에는 가시 돋친 논평도 함께 날아왔다. '국어학의 기본 개념들을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심스럽다', '기초적인 어학 공부를 좀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등의 지적들이 내 가슴을 할퀴었다.

물론 내가 부지런하고 주도면밀한 국어국문학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국어학과 국문학을 아우르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섭렵한 논문의 범위가 결코 좁지는 않았다. 기존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학계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내 나름의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나에게 어찌 '어학 공부'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나는 너무나 가슴이 떨려 '자존심'이라는 말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학회지에 논문 보냈더니 가시 돋친 논평이...

그렇지만 어떻게 하랴. 나는 되도록 그 학회지에 논문을 실으면 좋은 '을'의 처지 아닌가. 나는 그 익명의 심사자가 지적한 사항들을 꼼꼼히 짚어가면서 논문을 다시 손보았다. 보완 작업을 마무리 한 후, 전자우편으로 논문을 보내고 결과를 받아보기까지의 그 2주가 내게는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 사이에 내 머릿속에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 글을 이곳에 못 싣는다고 내 인생이 끝난다더냐' 하는 생각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얼마 후, 마침내 논문 게재 결정 판정이 나왔다. 두어 달 간의 노고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도 가슴 한켠에는 여전히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도대체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을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학계가 원하는 틀에 박힌 글만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전문적인' 학회지 논문이라지만, 왜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집필자의 자유로운 문체를 그다지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나는 그 뒤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예닐곱 편의 전공 논문을 더 써서 여러 학회지에 실었다. 하지만 그 논문 글들을 쓰면서 정녕 커다란 재미나 흥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스스로 나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논문을 쓴다고 버둥거렸지만, 다 써놓은 내 논문 속 문장들은 무미건조하고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더 이상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진짜 내 글을, 내가 진짜 갖고 싶었던 문체를 영원히 만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2011년을 마지막으로, 나의 학술적인 논문 쓰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글쓰기을 향한 나의 욕망은 결코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타올랐다. 작년 1월부터 10월경까지에 걸쳐서 고등학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언어학 개론서를 꾸준히 쓴 이유다. 그 10개월 기간에 A4 용지 90여 장 분량의 원고가 마련되었다. 글쓰는 방식을 내 마음대로 한 결과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운명의 그날이 밝아왔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2년 12월 20일의 아침이. 그날 아침의 그 낯선 기분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삶의 모든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듯했다. 앞으로 내 삶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하며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박근혜씨가 죽도록 미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그랬다.

글쓰기에 대한 강렬한 불꽃이 일어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내 마음 속에는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절망과 좌절, 무력감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그것들을 뱉어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12월 22일. 짤막한 첫 기사를 써서 '등록' 버튼을 눌렀다. 그후 지금까지 108개의 기사가 이 세상에 나왔다. 그 사이에 나를 뒤덮고 있던 절망과 좌절, 무력감이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죽비처럼 나를 후려친 시민기자 열두 명의 육성

하지만 나는 이 책 <나는 시민기자다>를 보면서 그런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뜨거움과 날카로움과 부지런함으로도 모자라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놀라운 감성의 힘으로 무장한 시민기자 열두 명의 육성은 그대로 나를 후려치는 죽비 같았다. 그 알량한 108개의 기사로 무슨 '자랑질'이냐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은 내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당신은 <오마이뉴스>의 당당한 시민기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태도와 시선을 가지고 있는가'(1), '당신은 도대체 왜 글을 써서 보내는가'(2), '당신이 <오마이뉴스>에 실은 글들은 과연 일정한 수준을 갖춘 것들인가'(3), '당신은 당신의 글을 읽는 독자를 정말로 알뜰살뜰하게 잘 챙기고 있는가'(4). 그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자신들의 생생한 경험에서 얻은 진실어린 대답을 내게 들려주었다.

(1) 시민기자의 시선은 직업기자나 사회적 명망가들이 지닌 이러한 단점들(현장성의 결여나 탁상공론 - 기자 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밑에서 위를 보는 시선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민중의 시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바라볼 줄 아는 현실의 시선이라고 할 수도 있다.(125쪽, 전대원 시민기자의 글에서)

(2) (좋은 글 쓰기와 관련하여 - 기자 주)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글 쓰는 이의 진정성이다. 아무리 효과적인 글쓰기 도구를 동원한다 해도, 필자의 진실한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글은 사회적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앞에서 여러 '글쓰기 전략'을 말할 때 '진정성'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글 쓰는 이의 믿음, 희망, 애정, 분노는 연습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119쪽, 강인규 시민기자의 글에서)

(3) 하지만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사 중 정식 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것들도 더러 있었다. 이유를 따져보니 근거가 빈약해서 채택되지 않은 글들도 있지만, 글에 2개 이상의 메시지가 뒤엉켜 있어서 그렇게 된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하나의 기사가 하나의 주제로만 전개되도록 신경을 기울였다.(209쪽, 김종성 시민기자의 글에서)

(4)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안다. 쉽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못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쓴 적도 많지 않은가.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쓰기에는 서비스 정신이 필요하다. 서비스의 첫 번째가 쉽게 쓰기이다.(189쪽, 김용국 시민기자의 글에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써서 올리는 일은 결코 재미로 하는 취미 생활이 아니다. 날것의 자기 감정을 배설하는 일도 아니다. '4대강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최병성 목사가 '불독'이나 '1인 군대'라는 별칭을 갖게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기사 한 편을 쓰는 일은 문제 투성이의 현실을 뜯어고쳐 어두운 세상을 조금은 더 밝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닐까.

나는 이 책에서 <오마이뉴스>의 쟁쟁한 시민기자들이 토로한 진심 어린 고백을 들으면서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내 글의 의미와 그 무게감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글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되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글의 주인공은 당신과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 쟁쟁한 시민기자를 꿈꾸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은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시민기자다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의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김혜원 외 11명 지음,
오마이북,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나는 시민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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