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알자지라국제다큐멘터리 필름페스티벌 단편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어쇽 타파 감독세계 유수의 영화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알자지라 다큐 영화제는 국제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고 좀 더 다양성과 다문화적인 작품들을 선정하고 있다. 장편, 중편, 단편, 인권,뉴 호라이즌 등 다섯개 부문에 걸쳐 17개의 작품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어쇽 타파 감독이 받은 상금은 15000QL, 미화로 약 4000$정도 된다. 사진 : 어쇽 타파씨 제공
사진 : 어쇽 타파씨 제공
지난 4월 21일, 제 9회 알자지라 국제다큐멘터리 필름 페스티발(이하 영화제) 단편부문에서 <코리안 드림>이라는 작품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올해 '세계를 위한 창'이라는 주제로 열린 영화제는 CNN, BBC와 함께 세계 3대 방송국이라고도 불리는 아랍권 최대 미디어 그룹인 알자지라 네트워크가 주관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에서 가장 인정받는 행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올해 제출된 90개국 1400여 개의 작품 중에 30개국 205개의 작품만이 본선에 초대되고 그중에서도 최종 17개 작품만이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코리안 드림>의 작품성과 주제의식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쾌거인 것이다.
하지만 이 수상은 그리 축하할 일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코리안 드림을 쫓아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의 차가운 '현실'을 다루고 있다. 2009년에 기습연행돼 본국으로 강제추방을 당했던 미누(미노드 목탄)씨가 활동하던 다국적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에 초점을 맞춰서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한국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태도 그리고 그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생각과 느낌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감독은 한국인이 아니다. 그 자신도 '코리안 드림'을 쫓아 한국에 왔던 이주노동자였던 어쇽 타파씨이다. 꿈을 쫓아 한국에 왔다가 현실에 부딪혀 카메라를 들게 됐고 이주노동자 운동에 참여했다가 본국에 돌아가서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의 현실을 그린 '코리안 드림'이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했음에도 정작 그 꿈의 나라인 한국은 무관심하다. 기쁘지만은 않은 이 수상을 한국사회에 알리고 그 수상의 의미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듣기 위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어쇽 타파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초청된 205개의 영화들이 다 훌륭했어요. 카타르 도하의 쉐라튼 호텔에서 있었던 영화제는 굉장히 화려했죠. 그 자리에 감독으로 초청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어요. 다양한 국적의 15명의 심사위원들이 <코리안드림>을 선택해줬어요. 상타는 건 예상 못했어요. 수상이 결정되는 순간 굉장한 기뻤고 네팔을 대표해서 상을 탔다는, 이주노동자들을 대표해 상을 탔다는 강한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네팔 사람으로서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이 최초일 거예요. 그만큼 네팔 언론의 관심도 뜨겁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어요. 이 영화를 통해 네팔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해서, '코리안 드림'에 대해서도 더 많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한국뿐 아니라 아랍에도 네팔 사람들 많이 이주노동 가 있어요. 이번에 상 타면서 그쪽 언론에도 보도가 됐어요. 그쪽 사람들도 그런 문제들 같이 관심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네팔을 여행하다 보면 코리안 드림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강남스타일은 물론이고 <꽃보다 남자>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한국드라마 팬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인 여행자에겐 대부분 동경의 눈빛을 담아 호의적으로 대한다. 네팔인들은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인해 세계 100여 개국으로 이주노동을 떠나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은 가장 가고싶은 나라 중 하나이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유사한 기후와 생김새와 더불어 한국은 좋은 나라, 멋진 나라라는 환상이 네팔 젊은이들에게 있다. 한국으로 가기 위한 관문인 고용허가제-한국어능력시험의 경쟁률은 치열하며 이를 위한 학원도 카트만두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에 가서 겪는 현실은 꿈과는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누, 영화의 감독인 어쇽 타파 감독도 모두 이 꿈을 갖고 한국에 가서 현실과 만났다.
"대학을 다니다가 외국으로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때가 2000년인데 호주로 유학을 가는 것과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가는 것을 신청했어요. 그러다 한국에서 먼저 비자가 나왔고 한국에서 뭘 배워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갔죠. 영화에도 나오지만 미누씨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은 불교국가니까 사람들도 착하고 차별같은 것도 없을 것 같다. 한국은 잘 살고 좋은 나라니까 하는 그런 판타지가 있었죠. 그때 호주에 유학을 갔다면 어땠을까. 인생이 또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 종종 생각하기도 해요.이들이 한국에 가서 만난 현실은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3D 작업과 차별이었다. 가구공장, 도금공장, 봉제 공장등에서 일하며 이들은 현실을 조금씩 알아갔다. 그리고 2002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대대적인 강제추방은 이들에게 한국이 자신들을 한국사회의 일원으로도, 최소한의 사람으로도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또 강제추방이라는 것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