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초등학교부천형 엘 시스테마 '아트밸리' 음악 합창교육을 받고 있는 부천부곡초 어린이들
양주승
다문화가정 학생도 함께 부르다
학년이 다르다고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듯,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도 하모니를 이루는 데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지역적 특성상 다문화가정이 많은 부천부안초등학교가 그러했다.
"여기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좀 있어요. 어머니가 외국분인 학생들이죠. 이 학생들이 합창반에 들어오는데 분위기가 썰렁해지더라고요." 김대훈 강사는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이 합창반과 함께했던 첫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친밀할 수는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나와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말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한국 학생들과 다문화가정 학생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들 사이에는 누구 것인지 모를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줄을 설 때도, 노래의 파트를 나눌 때도 심지어는 휴식 시간에도 합창반 교실에는 언제나 낯선 공기가 감돌았다. '더 늦어서는 안 되겠다.' 아이들끼리 친해지길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김대훈 강사와 신윤영 담당 교사는 협연을 시작했다.
먼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포함해서 각각의 아이들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를 파악했다. 각자의 개성으로 빛을 내려는 아이들이 아닌가.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 개개인의 사정에 맞게 아이를 대할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실시했다. 합창의 기본은 인성교육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때로는 엄하게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은 차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소속감이라는 걸 경험하게 됐다. 아이들 모두에게 공동체 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렇게 뚜렷했던 경계선이 누구에 의해선지 모르게 사라졌다.
부천부안초등학교 김우일 교장은 인성교육의 측면에서 합창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요즘 아이들이 주위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합창반을 통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해볼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죠." 김우일 교장은 학교에 합창반이 없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전하며 그 단적인 예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변화라고 했다. 또한 합창반 학생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 다른 재학생들 역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도 덧붙였다.
2011년부터 4~6학년 학생들 60명과 합창반을 시작한 석천초등학교의 박태연 교장 역시 합창뿐만 아니라 부천아트밸리사업으로 진행되는 여러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학생이나 선생님들의 변화는 물론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의 변화 역시 가져올 수 있다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내비쳤다. 실제로 합창반 활동을 보고 합창반을 후원하는 '열혈 학부모님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세계를 노래하다합창을 통해 차이를 존중하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살포시 알게 된 아이들. 아이들의 변화는 이처럼 어른들에게도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은 다름을 어떻게 조율해갈 수 있을지 그 비법을 서서히 터득하고 있었다.
"저희들끼리 싸운 적은 없어요. 생각이 다르다고 무시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어요." 합창반 활동을 시작한 지 3년이 됐다는 소명여자중학교 3학년 이하나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하나 학생은 합창의 가장 큰 매력이 남의 목소리에 주위를 기울이게 된다는 데 있다며, 노래를 부를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을 때도 습관처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어떤 노래를 했으면 좋겠는지 회의를 자주 하는데, 학년에 따른 차등 없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것.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이라고 불리는 케냐의 지라니 합창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도 했다. 자신들은 그저 노래를 부르는 게 좋아서 합창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한테는 합창이란 게 삶의 전부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값진 계기였다고 했다. 합창반이 되지 않았더라면 저 먼 나라 합창단의 이야기도, 그들이 어떤 희망을 품고 합창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이하나 학생은 지라니(Jirany) 라는 말이 '좋은 이웃'이라는 뜻이라며, 합창을 통해 '좋은 노래'를 접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멋지다고 덧붙였다.
부천아트밸리사업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지라니 합창단의 아이들처럼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 때문에 예술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뜻깊은 기회를 제공하는 예술 프로젝트가 되면 좋겠다는 말 역시 빼먹지 않았다.
2008년 지라니 합창단을 예일대학교 공연에 초청한 예일 클럽 제프리 다우마(Jeffrey Douma)는 지라니 합창단의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 올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케냐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미국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오늘밤은 지구촌의 모든 인종이 하나 되는 위대한 밤이다!" 전인적인 예술교육을 통해 모든 아이들이 사회와 세계에 만연한 모순을 자각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며 타인들과 '좋은 이웃'이 돼 더불어 살아가길 바라는 예술적 진심. 부천아트밸리사업의 하모니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들일 것이다.
오늘, 합창을 배우며 타인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며 세계를 넓게 바라보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한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내일, 더 큰 하모니의 시작과 끝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합창에 참여하는 학교는 부천부곡초를 비롯해 까치울중·정명고교 등 3개 초중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