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 '도심 속의 무인도'

등록 2013.05.06 13:30수정 2013.05.0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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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씨표류기>에는 세상을 등지고 밀폐된 인터넷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여자 '김씨'와, 도심 속 무인도에 떨어져 태고의 삶 형태로 살게 되는 남자 '김씨'가 함께 등장한다.

3년 째 좁고 어두운 방에서 지내던 은둔형 외톨이 여자 김씨는, 사이버세상의 온갖 기호를 소비하며 자신만의 온라인공간속에서 '내가 아닌 나', 혹은 '보여주고 싶은 나'로 거짓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던 그녀는, 세상과의 단절을 소원하며 자살을 시도하다 밤섬에 표류한 남자 김씨를 발견한다.


'살아있는' 인간인 그의 모습을 통해, 여자 김씨는 세상과 연결되는 그녀의 유일한 통로인 '가상공간'을 빠져나온다. 남자 김씨 역시 '살아있는' 인간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람 없는' 그만의 공간을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진정한 삶의 소통이 숨겨있다. 그것은 '가상'공간에서 만날 수 없는, '실제'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내적 현실을 외부 현실과 연결시켜야 하는 통로위에 놓여있다. 지난 수년간 소셜 네트워크의 다양한 채널증가는 불특정다수가 소통할 수 있는 만남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손쉬운 연결망 구축과 스마트한 기기를 통해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 페이스북 등과 같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해,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인맥을 갖추고, 그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서로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며 글을 읽고 댓글도 달아준다. 약속장소와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고도, 스마트폰 속에서 그들과 즉각적으로 빠른 응답이 오고간다.

음성이 묻어나지 않기에 자신의 기분을 속이는 거짓말로 댓글을 달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역시 나를 진정으로 알 수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모습으로 나를 포장한다. 그렇게 사이버공간은 진정한 자아를 왜곡시켜 나간다.

실제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충동을 가지게 된다. 온라인 관계형성에서 오는 '연결의 과잉'은, 처리과부화 등의 문제를 떠안으면서도 오히려 '관계의 결핍'을 초래하게 만든다. 이 상반된 둘의 모호한 공존은, 네트워크가 진화를 거듭하면 할수록 황량해져가는 인간의 내면과도 꼭 닮아있다.


최근 정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인터넷상에 공개된 블로그 중에서, 한 달 한 번 이상 글이 갱신되는 경우는 전체의 2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막상 자신이 올린 글에 댓글이 달리지 않거나, 남들이 봐주지 않으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타자와의 연결통로로 삼았던 블로그가 오히려 번뇌를 키울 수도 있음을 항상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물질과 정보가 넘쳐나는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대적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기 드보르는 "현대사회에서는 특권적인 인간 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 그 특권적 인간 감각은 촉각 이었다"고 말했다.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짐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현실에 대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변하게 된다.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현실 세계는 사라지고 시각적으로 특화된 이미지의 세계만 남게 된 것이다.


SNS 기반의 관계 과잉이 사람들과 친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일상을 속속들이 다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소외받은 사람이라도 한동안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과시하고 행복한 척 과장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를 끊고 오롯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의 위치와 실제 삶 속에서의 자기 위치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왕은 충성스런 신하들이 전달해주는 정보 속에서 왕좌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왕궁이 있기 때문에 왕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었다. 블로거들은 자신이 지은 블로그 안에서 사람들의 감시를 피할 수 없다. 

이 둘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들의 인간관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동시에 적절한 접촉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사이버공간 속에서 보여 지는 자신의 모습이 실제의 삶과 비슷하게 이어질 때에야 진정으로 표출된다고 본다. 가상현실에서의 삶을 현실에서도 적응시킬 수 있도록 인터넷을 대체할 자신만의 공간 밖으로 우리는 뛰어나가야 한다. 화려한 불빛 속에 어둑하고 조용하게 자리 잡은 거대한 섬, 덩그러니 육지와 떨어져 있는 그 밤섬이 우리가 집착하고 있던 사이버공간 속의 그 무엇은 아닌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온라인상에 올려진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곳을 벗어나 타자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라. 키보드를 두드리던 당신의 그 손가락으로 타자의 숨결에 따라 떠다니는 공기와 접촉하라. 그리고 진정 그가 글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를 그의 입을 통해 읽어보라.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가 그들만의 표류를 끝내고 세상 밖으로 몸을 내밀었을 때, 결핍된 세계는 이미 또 다른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리고 '실제' 그들의 삶이 시작되었다.
#사이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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