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명박 전 대통령.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첫 해외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유성호
이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의무와도 잘 맞는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 66조에서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진지한 태도에도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대결로 점철됐다. 그의 임기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시작됐고,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마무리됐다. 같은 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시작은 개성공단의 잠정폐쇄다. 왜 이렇게 됐을까.
통일을 실현 가능한 목표로 삼는다면, 다음 질문은 그 방법이다. 문제는 그 방법을 모른다는 데 있다. 어떤 식의 통일이든 통일은 체제의 변화를 동반하게 돼 있고, 체제의 변화는 곧 새로운 제도의 확립을 의미한다. 여기서 제도란 법률적 규정에 한정되지 않고, 장시간 유지되는 사회조직의 체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통일은 새로운 제도의 설립을 요구하지만, 한 사회의 제도가 어떻게 설립되고 유지되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과학자들은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여러 제도가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도 알고, 한 번 제도가 성립되면 오래 지속된다는 것도 아는데, 도대체 그 제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2011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꼽은 사회과학의 10대 난제 중 하나가 바로 효율적이고 유지가능한 제도의 생성 문제였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은 사회과학의 10대 난제 한 국가에 새로운 제도의 성립, 레짐체인지를 목표로 거대한 군사작전을 펼친 사례가 바로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있지도 않은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가 이라크 침공의 직접적 빌미였지만, 당시 신보수주의 이론가들은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들어설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중동 전체에 끼칠 긍정적 영향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라 새로운 혼돈상태가 오래 지속됐다. 인류 사회는 기존 제도를 붕괴시키는 방법은 알지만 새로운 제도를 설립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재확인했다.
통일을 목표로 삼고 방법을 제시하는 건,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나는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북한이 주장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이명박 정부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사실상의 내부 붕괴를 기대하는 흡수통일이나, 주석궁에 탱크를 몰고 들어가는 것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던 두 체제 연방제 국가를 설립해 통일을 이루겠다는 낮은 단계 연방제는, 애초부터 새로운 제도의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어 내게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홍콩·마카오가 전례가 되는 일국양제는 한 체제의 일방적 군사적 우위에 근거한다. 모두가 알 듯, 이 제도의 성공은 중국 체제의 자본주의화가 크게 작용했다.
군사·정치적으로는 홍콩 마카오가 중국에 복속된 것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홍콩에 복속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적으로 비등한 두 체제가 한 국가 내에 존재하는 제도는 통일로 가는 과도기가 아니라 내전으로 가는 첩경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두 체제, 두 제도의 양립은 주로 내전으로 해소됐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군사적 강경책은 포퓰리즘에 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