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비스토커>의 표지.
마카롱
2013년이 된 이후, 또 하나의 영화매체가 독자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라졌다. 최근까지 <씨네21>과 더불어 영화매체의 두 축으로 남아있던 잡지 <무비위크>가 지난 3월, 창간 12년 만에 폐간소식을 알린 것이었다.
국내에서 영화의 관객동원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영화평론 시장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더 많이 극장을 찾지만, 그 영화가 무엇을 담고있는지를 알기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면은 이제 많지 않다.
어쩌면 영화평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즐기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재미있다(혹은 없다)"라는 한마디보다 자세하게 써놓은 글에는 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은 듯 하다.
영화평론가 최광희가 <무비스토커>의 머릿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영화보기는 "즉흥적으로 감정을 구매하는 행위로 변질"되어가고 있는데다 "평론가는 점점 더 쇼핑호스트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런 오늘날,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도전'에 가까운 일이다. 영화평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어가는 와중에 나온 영화평론가의 책이라니. 하지만 <무비스토커>는 영화 그 자체보다도 재미있는 영화이야기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 점도 매우 흥미롭다.
까칠한 영화평론가 최광희, 영화로 우리네 일상을 말하다며칠전 뉴스채널 <YTN>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다. 한국영화의 추세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영화평론가 최광희가 초대손님으로 화면에 등장한 것이었다. 새로 진행을 맡게 되었다는 남성 뉴스앵커가 여성앵커를 가리키며 "우리,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미소를 띈 얼굴로 간결하게 대답한다.
"아니오,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그 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할 말은 하는구나. 빈 말은 안 하는구나'하고. '허허' 웃는 모습으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얼른 코너를 진행하려는 앵커의 모습은 딱해 보이기도 했지만, 최광희씨의 짧은 대답은 형식적이고 겉치레에 가까운 인사에 대한 까칠한 거절이었다.
그런 사람이 영화평론가임이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최근 영화계에서 홍보와 경계가 모호해진 평론들이 많아진 탓이다. 번지르르하게 치장된 예고편만을 믿고 극장을 찾았다가, 속 빈 강정같이 시시한 영화에 실망한 적이 어디 한 두번이었나. 영화를 평한다는 매체들마저도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영화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거들고 있는 요즘 아닌가 말이다.
<무비스토커>는 앞서 언급한 그의 말처럼 직설적이고도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쓰여진 책에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나와있다. 영화 <노팅힐>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말하는가 하면, <시>를 통해서 삶의 먹먹함을 전한다. <핸드폰>으로 스마트폰에 중독된 세태를 짚어내고,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분노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포착한다. 요컨대, 평범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표현된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부시도 살지만 촘스키도 산다?직설적인 화법 만큼이나,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영화를 보는 관점 또한 매우 뚜렷하다. 그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가른 다음, 전자에는 진심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고 후자에게는 혹독하게 비판한다. 특정 영화를 두고 '좋다, 나쁘다'라고 구분짓는 것을 누군가는 불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각 영화들마다 평가를 적어내려간 부분을 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좋았던 시절의 빛바랜 회고를 통해 스러져가는 자신을 위무하지 않는 대신, 현재진행형인 폭력의 악순환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떠나고 남을 어린 세대가 살아가기에 여전히 위험천만한 세상을 안타깝게 껴안는다. 그러고는 미안하다고, 너희에게 이런 세상을 남겨서 너무 미안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어른의, 그것도 아주 존경할만한 어른의 넉넉한 품이다. 묵직한 경외심이 돋는다." - 본문 80P 중에서또 영화 <아바타>에 대한 평론에서는 "자본과 기술, 재능이 가장 행복하게 만난 사례"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