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의료기관에서 쓰이던 산소호흡기(왼쪽)와 붕대통(오른쪽) 등 기기들.
장선애
희로애락을 함께 한 대흥의원예산군과 인근 시군의 향토사학자들 사이에서 이수씨는 유명하다.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알게 모르게 지역의 역사연구에 많은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특히 백제부흥군과 임존성, 봉수산(대흥산) 관련 학술행사장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젊은이들보다 더 열심히 발표를 듣고 토론에도 나서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교수들도 광시 마사리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대흥 동서리로 시집와 평생을 살며 선대로부터 듣고 보아온 이 산증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연구 자료로 삼았다.
이수씨가 임존성 역사에 적극 나서게 된 계기가 있다.
"어느날 신문을 보니 '어느 마을에서 형제가 힘자랑 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간단히 나왔더라고요. 봉수산 묘순이 바위얘기잖아요. 제대로 바로잡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이십 몇 년 전 당시 예산문화원 이항복 원장과 함께 봉수산 역사를 알리는 마당극의 극본을 쓰고 복장도 직접 고증해 공연을 했는데 그게 지금의 백제부흥군위령제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 당시 공연장에 온 관객들에게 콩죽을 쒀먹였다고 하니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는 지역축제의 시작이기도 하다.
향토사학자들에겐 유명인사딸 성구씨는 "제가 학교 다닐 때 국사선생님이 수업하시다가 문제가 막히면, 어머니께 배워오라고 하셨을 정도였어요"라며 "학교라고는 문턱도 못 가보신 분이 연대기를 외우시고 왕조 역사를 줄줄이 꿰셨다니까요"라고 자랑한다.
"우리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사상을 가졌냐면 '여자는 접시 열 개를 못세어야 잘산다'고 하셨어요. 운동회날까지 학교에 놀러갈까봐 매질을 할 정도였죠. 글자는 남동생 배울 때 어깨넘어 깨쳤어요."부지깽이로 부엌바닥에 글씨 연습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소녀의 학구열은 지금까지 긴 세월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수씨의 방에는 책들이 많다. 두꺼운 역사사전, 인물사전부터 단행본 책까지. 파일철도 여러 권이다. 편지든 안내문이든 신문이든 읽다가 특이하다 싶은 것은 스크랩해 모아둔다고 한다. 벽 한켠에는 세계지도와 한국지도가 나란히 걸려있다. 참 대단한 할머니다.
시간이 가도 늙지 않는 어머니의 학구열에 딸 성구씨는 머리를 흔든다.
"엄마는 지금도 여행을 가시면 하나라도 더 보고 공부하려고 하세요. 그래서 단체여행을 가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기도 한다니까요."남편의 병원일을 도울 당시에는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환자는 많고 일손은 딸리니 나도 보조를 해야 했는데, 약품이 모두 영어로 쓰여있어 알 수가 있어야지. 내가 약도 못찾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날 밤에 알파벳 26글자를 모두 외워버렸지."아무래도 보통머리는 아닌 듯한데, 지금은 예전같지 않다며 속상해 한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눈이 아파서 이제 오래 보기가 어려워요. 가고 싶은 곳, 보고싶은 것들이 많은데 그것도 예전처럼 쉽지 않고…."그 중에 가장 아쉬워서 꼭 하고 싶은게 있느냐고 물으니 "지난 게 다 아쉽죠. 수의 전시회 했을 때 어떤 교수님이 인사동에서도 하자고 했는데 그걸 못한 게 두고 두고 아쉬워"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러고 보니 2001년 예산군문예회관에서 열린 수의전시회 당시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든 남녀 전통수의도 화제였지만, 출판사와 일일이 연락하면서 만든 도록이 많은 이들에게 감탄을 줬던 일이 있다.
이수씨는 도록 앞쪽에 위성사진으로 본 임존성의 모습과 충청도읍지(대흥군)의 옛 지도를 수록하고, 임존성에서 바라본 예당저수지 사진, 임존성 유구 배치도를 넣어 지역역사의 중요성을 알렸다.
이 평범치 않은 할머니, 이수씨는 언제까지나 대흥의 역사를 증거하며 옛 대흥의원에서 살아 가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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