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가 우체통을 달았다. 그 뒤로, 둘은 속깊은 대화까지 나누기 시작했다.
김진형
우리 첫째 아이는 일곱 살, 둘째 아이는 네 살이다. 흔히 말하는 '미운 네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다. 특히 첫째는 딸인데, 사사건건 엄마와 대립한다. 유치원에선 '바른 생활 아이'로 통하는데, 집에서는 세침하면서도 왈가닥스런 극단을 수없이 오간다.
끊임 없이 묻고 의심한다. 엄마가 뭐라 그러면, 딸은 "아닌데, 선생님은 그렇게 얘기 안 했는데?"라며 엄마의 신경을 돋운다. 엄마의 권위는 유치원 선생님의 권위에 무시당하기 일쑤다. 엄마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날 아내가 집안에 우체통을 달았다. 그리고 딸을 불러, 우리 이제 편지로 종종 대화하자고 초청했다. 엄마에게 편지를 쓰면, 아침 우체통엔 엄마의 답장이 담겨 있다.
엄마가 여행가던 날도 그랬다. 엄마의 편지를 읽은 딸은, 엄마가 돌아오는 날에 맞춰 답장을 썼다. 그 뒤로, 둘은 속깊은 대화까지 나누기 시작했다.
부모력의 핵심은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설 '행복한공부연구소'의 박재원 소장은 부모력의 핵심은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기성세대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내면화하였기 때문에, 자녀와 수평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 유독 힘들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유난히 '화'라는 감정을, 특히 자녀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출했던 사회적 습관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박재원 소장은 그런 부모들에게 글로 써서 마음을 전하는 '메모 소통법'을 권한다. 아이와 마주하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화를 참거나 아이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부모로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쉽고 효과도 탁월한 방법은 바로 메모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것입니다.(<학원 없이 살기>, 49쪽)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줄 때 학습동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학습동기는 자기주도학습의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거기서부터 아이와 부모가 다같이 행복한 교육의 가능성이 열린다.
No Worry, Be Happy!2008년, 입시와 사교육 고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대중운동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이 출범했다. 학부모, 교사, 학생간의 연대를 통해, 무익한 사교육 경쟁의 위선과 과장을 폭로하고, 무한 경쟁이 아닌 적성과 소질에 따라 자신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건강한 사회 실현을 목표로, 선행교육금지법 제정 등의 당찬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교육걱정'은 학원권력과도 맞짱 뜨며 선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옆집 엄마에게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기르도록 돕는 '등대지기학교'와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육 관련 온라인 상담소인 '노워리 상담넷'을 운영하며 생산적인 대안 운동에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0년 출간된 <아깝다 학원비>를 통해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의미 있는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다면, 이번에 '사교육걱정 노워리 상담넷'이 펴낸 <학원 없이 살기>(2013.4)는 그 실천편이다.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는 학습법, 영어, 수학, 독서와 글쓰기, 생활 및 심리, 학교 생활에 이르는 각론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친절하고 세심하게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입시 환경은 변화무쌍하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사회는 명문대 입학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는 우리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 혹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인 양 왜곡한다. 끊임없이 '당신의 자녀가 뒤쳐지지 않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불안 마케팅을 감행하여,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도모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학원가를 전전긍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