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타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고열 때문에 시각을 잃었다.
추연만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젤레께(남·8), 더러운 웅덩이에서 출산을 하는 바람에 감염으로 인한 시작장애를 가지게 됐다는 사라(여·9),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고열 때문에 시각을 잃었다는 삼바타(여·15세) 그리고 아주 가까운 것은 알아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고 있다는 메셀레치(16)와 제리투(17).
다섯 아이들은 장애와 가난으로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방치된 아이들로 각기 다른 지방에서 살던 아이들이다.
"이 나라에 처음 왔던 20년 전에는 장애인들을 전혀 볼 수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정을 방문해보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없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어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누군가 도와줘야 문 밖이라도 나오는데 도울 사람이 없으니 방치된 채로 살다 생을 마감하는 거지요." 아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는 한별학교 정순자 교장은 에티오피아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 살고 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의 형편도 다르지 않아요. 부모가 없어 이웃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았거나 부모가 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삶을 살던 아이들이거든요."방치된 채 죽음을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보호자가 생겼다. 정부에서 이들에게 집을 얻어 주고 헬퍼에게 일정한 월급을 지급해 아이들을 돌보도록 지원한 것이다. 딜라에서 혹은 전 에티오피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유일한 공동생활가정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이 삶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메셀레치와 제리투 둘 이었지만 젤레께·사라·삼바타가 함께 살게 되고 가족은 금방 다섯이 됐다. 그리고 1년여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들은 다시 거지가 됐다. 어느날 갑자기 헬퍼가 사라지더니 집세와 식량지원 마저 끊겨버린 것이다. 알아보니 정부를 통해 이들을 지원하던 후원자가 사라져 어쩔 수 없다는 것.
다섯 아이들의 삶은 다시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가 된 다섯 아이들은 당장 굶어죽을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 따뜻한 이웃 엄마들이 발 벗고 나서 이들을 도왔다. 자신들도 1달러에 못 미치는 돈으로 근근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빈민들이지만 앞 못 보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웃의 십시일반으로 자라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