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오신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를 닮은 이 분은 알고 보니 브라질에서 오신 목사님이었다.
류소연
그러나 아직까지는 최악이 아니었다. 이날 나는 까미노를 걷는 10일 내내 다시는 없을 '멘탈 붕괴'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웅덩이를 지나쳐,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까 것은 별것 아니었다고 말하는 듯한 '진짜'가 나타났다. 불어난 계곡물이 길을 완전히 덮어 7m 정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앞선 사람들이 이미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그곳을 건너는 것이 보였다. 아까 우리를 도와주셨던 할아버지도 그렇게 건너고 계셨고, 다른 노인분들도 그렇게 건너고 계신 것이 보였다. 우린 출발 1시간여 만에 이미 추위와 비로 지쳐 있었기에, 이건 정말 '멘붕'이었다. 정신이 없어 사진을 찍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앞서 건너가 있었던 한국인 분들이 그나마 물이 얕은 지점을 알려 주셨다. 그분들은 다른 지점으로 건넜다가 바지 주머니의 라이터까지 젖어서, 건너서 담배조차 피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길이 완전히 막혀서, 어떻게든 물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영지 언니도 '멘붕'이 왔던지, "아예 바지를 벗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들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에 들어갔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물 깊이는 고사하고 마치 다리를 몸에서 떼어내는 듯이 차가웠다. 발가락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건너고 나서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웅덩이 이후에 어떤 고난의 길이 나와도 나는 그 웅덩이를 생각하면서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에 감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