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표지.
돌베개
'세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몇 명 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로 태어나 이복형인 이방원에게 목숨을 빼앗긴 이방석. 태종 이방원의 아들로 태어나 14년간이나 세자 생활을 하다가 전격적으로 교체된 양녕대군.
선조의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냉대 속에 갖은 설움을 다 겪다가 임진왜란 때 세자가 되어 전쟁을 총지휘했으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아버지의 외면을 받은 세자 시절의 광해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뒤 아버지인 인조의 의심과 견제를 받다가, 귀국하자마자 의문의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
열 살 때부터 기득권층과 외척세력을 비판하다가 스물여덟 살 젊은 나이에 뒤주(곡식 상자)에 갇혀 사망한 사도세자. 세도가(권세가)의 힘에 밀려 왕권이 약해진 순조시대에,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며 기득권층을 긴장시키다가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효명세자 등.
이처럼 우리가 쉽게 기억하는 세자들은 대개 다 불운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세자들 중에서 잘 된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이나 사극에서 불행한 세자들의 사례만 다룬 탓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도, 세자들의 운명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가까웠다.
한국사 혹은 한국학 학자들인 심재우·임민혁·이순구·한형주·박용만·이왕무·신명호가 공동 집필한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란 책에 나오는 세자들의 운명은 그다지 밝지 않다. 세자란 위치는 왕위를 보장받는 전도유망한 자리라기보다는,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받는 불안한 자리에 더 가까웠다.
왕을 다루는 제왕학에 관한 서적은 쉽게 접할 수 있다. 각계각층에서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 분야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다. 이렇게 오피니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런 책들이 출판시장에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미래의 왕'인 세자를 다루는 이른바 '세자학'은 아직은 낯설다.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는 그런 낯선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책이다. 교양서와 학술서의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세자 문제를 탄생, 책봉, 교육, 결혼, 대리청정(주상 직무대행), 문학 생활, 인간관계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세자에 대한 개론서 혹은 개설서를 시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자와 관련된 각종 의식이나 절차를 세밀하게 설명한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또 어느 시기에는 세자 책봉을 먼저 하고 관례(성인식)를 나중에 했고 또 어느 시기에는 그 순서가 서로 뒤바뀌었는지 하는 식으로, 의식과 절차의 변천 과정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보여준 특징 중 하나는, 역사와 문학의 접목을 통해 세자들의 내면세계까지 들여다보려 했다는 점이다. 이 책 제5부에서 사도세자와 효명세자의 한시를 읽다 보면, 좁은 구중궁궐에서 바깥세상을 품으려 했던 그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세자 문제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들여다보려고 한 것은 꽤 긍정적인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세자들은 왜 그렇게 '불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