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다카시 기념관 내 전시물에 소개된 '히로히토 천황'의 나가이 다카시 박사 방문 사진 등.
전은옥
선생님은 나가이 박사가 책임자를 정확히 언급한 적 없이, '우리들 시민들 모두'에게 책임을 돌린 데 대하여 위화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가이 박사가 원폭으로 아내를 잃고 또 백혈병 환자로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점이나 남겨진 아이들을 돌보며 병상에서도 최후까지 필사적으로 저술을 했던 것은 분명 인간으로서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이며, 의료와 구호활동 등에 있어 그의 삶의 업적은 분명히 평가할 만한 부분이지만, 그 업적과 함께 한계점도 분명히 봐야 한다는 게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도 나가사키 원폭의 피해자였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이렇게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전쟁의 책임은 일본 천황과 당시 전쟁을 일으키고 주동하고 적극 협력한 권력집단에 있죠. 이 경우 분명한 책임자와 가해자를 지목하고 처벌하는 것이 전후 청산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도 역시 당시의 아시아 침략전쟁과 가해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책임자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적 성찰과 반성은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그 뒤 선생님에게 다시 한 번 이메일로 짧은 서신을 보냈지만,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대립하거나 상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선생님도 내 생각을 인정해주시시라 확신한다.
전쟁의 최고 책임자는 천황이다. 그리고 전쟁을 주동했던 전범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민중을 전쟁에 동원하고 억압하고, 타민족을 학살하고 강제동원하고 억압했던 책임자와 가해자는 엄연히 존재한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전쟁과 원폭을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면, 진정한 책임주체를 은폐하고 역사를 더욱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것을 분명히 하면서, 각자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성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가이 박사는 어느 쪽이었을까.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돌려버린 쪽일까. 아니면 전쟁과 원폭의 책임이 일본천황과 군부, 권력층과 미국 등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전쟁 체제의 일부였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래도 후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