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바다 (2012년)
강요배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제주도에 처음 갔을 때처럼 아주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명주바다>, <길 위의 하늘>, <월아사>, <바위 틈 문주란>, <물돌>, <샛별>, <적벽>.... 그가 그린 제주의 자연은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제주, 내 머릿속에 있던 제주의 이미지와 너무도 달랐다. 형식 자체도 여느 풍경 화가들의 그것과 달랐다.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멤버로 화가가 활동했던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탄생한 민중미술의 예술적 본질과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갤러리 초입부터 그림들이 관람객의 발길과 눈길을 담박에 붙잡는다. 가장 제주다운 풍경이 아닐까 싶은 먹장구름이 아주 인상적인 작품 <길 위의 하늘>이 그것. 짙게 드리워진 새벽의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며 환하게 동이 터오는 순간, 화가는 이 찰나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깊게 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숱한 날들 밤을 지새우며 먼동이 트기를 기다렸을까.
전시회도 화가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 관람객이 적었는데 그래서 오롯이 그림 감상에 몰입할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넓은 벽면 한쪽을 다 차지하는 커다란 제주의 자연 <파도와 총석>을 홀로 독대하게 되는 벅찬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총석은 주상절리를 뜻하는 말로 불의 몸이 바다와 맞붙어서 발끈한 돌기둥이다. 중문해변을 따라 기립한 총석들은 제주가 불의 탄생지요, 신화지라는 것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