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에서 바라본 전설의 삼학도. 저곳에 이난영의 유해가 수목장으로 안장 되어 있다.
최오균
천재시인 문일석은 일본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후 무명시인으로 목포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일보>에서 노랫말 가사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24세 때 '목포의 노래'를 습작으로 지어 응모했다. 당시 일본 와세다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명문가였던 그의 집안의 아들인 그가 유행가 가사를 응모하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자, 그는 문일석이라는 필명으로 응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임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임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문일석은 이 가사를 지은 후, 이 노랫말 때문에 28세(어떤 기록에는 26세라고도 함)의 젊은 나이로 유랑을 하다가 요절을 하고 만다.
그의 노랫말 중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이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 하여, 그는 일본경찰에 끌려가서 호된 문초를 받게 된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란 가사는 3백 년 전 이순신 장군이 고하도와 유달산 노적봉 밑에 진을 치고 있어, 왜적들이 그 당시에는 꼼짝도 못했던 곳이었다는 내용은 담고 있다. 사실 노랫말 속에는 그 당시 한민족의 설움과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