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자 아름다운 숲은 곧 두려움으로 변했다.
조남희
거뭇하게 어두운 울창한 숲 속에서, 우리는 숲을 나가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 있었다.
"이쪽인가? 아냐 이쪽인 것 같아.""리본이 없어요.. 어떡하지?"결국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자 어쩌다가 나타나는 나무의 리본 따라가기는 포기하게 되어버렸다.
"오설록 부근에서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으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나가면 될 거야."그런데 어쩐지 아까 왔던 것 같은 곳에 다시 온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 길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누군가 마음속에만 담고 있었던 것 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내자,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전화의 신호는 아주 약했고, 지도 어플을 실행시켜 현 위치를 파악하려고 해도 위치가 잡히지 않고 엉뚱한 곳만 가리켰다. 결국 올레 사무국에 전화를 했다.
"여기 곶자왈에 들어왔는데.. 도저히 나갈 수가 없어요! 어떡하죠?""곶자왈은 십 분만 헤매도 바로 나와야 하는 곳이에요. 어서 나오세요." 우리도 무지하게 나가고 싶었다. 이러다 해가 지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쪽으로 최단거리로 움직이기로 하자, 사람이 지나가기 어려운 길을 만들어 나가야 했다. 가시덤불이 살을 할퀴고 옷을 붙들자, 이 숲이 나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니 여기 소주병이 있어요!!!"바닥에 뒹구는 소주병을 발견하고 기뻐서 외쳤다.
"진짜?! 사람이 있긴 했구나! 근데 좀 오래되어 보이네…""혹시 이게 그 사람이 마신 마지막 소주는 아닐까……"가시덤불을 헤치면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공사장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밖이 보이는 것 같아!"처음 진입했던 곳에 다시 이르러서야 우리는 알게 되었다. 두 시간가량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로 뱅뱅 돌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기운이 다 빠져버린 우리를 데리러 온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우리 얘기를 듣고 말했다.
"늬들, 아무래도 뭐에 홀린 것 같다.. 거기가 그런 곳이 아닌데…."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영혼들이 있고, 그러지 않아도 무속신앙이 강한 제주도는 사람들이 헛것들을 본 이야기가 많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마을지에 실려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의 다양한 헛것들에 대한 이야기 중 이런 것이 있다.
'이 마을 어떤 이가 낮 열두 시에 웃너븐드르에 밭을 보러 갔는데 밤 열두 시가 되어도 안 돌아왔다. 친척들이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올라가 찾아보니 곶자왈(산속의 가시덤불) 속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보니 가시덤불 속에서 헤매고 있었고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이 속에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도채비(도깨비)한테 홀린 것이 분명하다.' (제주거욱대 중 인용, 강정효 지음, 도서출판 각)"이런 나를 데리고 꼭 거길 다시 가야겠냐?""그럴수록 다시 가서 극복을 해야지!"반년 만에 다시 찾아간 곶자왈... 빠져나오지 못했던 이유를 찾다거의 반년 만에 다시 청수곶자왈을 찾았다. 작년에 갔던 기억을 더듬어 곶자왈로 진입하는 길을 차분히 찾다 보니, 작년에 홀린 듯이 곶자왈을 빠져나오지 못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곶자왈 입구로 들어간 것이 아니고 무작정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곶자왈 옆구리로 들어간 것이다. 올레길 코스가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들어간 곳에도 대강 리본들은 붙어 있었고 사람이 걸어들어갈만 했으니 간 것이고, 거기서 다시 역방향으로 나오자니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