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의 진해 시가지 사진(진해군항마을역사관), 지금과 예전의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다.
김종길
1층과 2층의 시립박물관을 지나 전망대에 오르니 발아래로 진해 시가지가 사방으로 펼쳐졌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중원로터리다. 1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의 진해 시가지 사진과 너무나 흡사했다. 로터리 가운데에 수령 12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당시에 있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일제는 당시 진해를 개발하면서 중원로터리와 남원로터리, 북원로터리 중심으로 도시를 계획했다. 지금도 진해 시가지의 모습은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중원로터리가 일제의 욱일승천기를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과장된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도로 설계상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욱일승천기가 2차 세계대전에 주로 사용되었는데 중원로터리가 건설된 것은 그보다 훨씬 빠른 시기며, 중원로터리가 8곳 방향으로 길이 나 있다면 욱일승천기는 16개의 햇살을 도안한 것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로터리 가운데에 있는 수령 1200년이 넘은 팽나무를 중심으로 설계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일제의 흔적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력한 의지의 서로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전망대를 시계방향으로 돌며 진해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진해항부터 대죽도, 중원로터리, 남원로터리, 북원로터리, 저도, 관출산, 진해역, 여좌천, 장복산, 안민고개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야트막한 산이 주는 풍광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한참을 넋을 빼고 있다 이 천혜의 땅을 기지로 삼아 시가지를 닦은 일제와 그 땅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의 아픔을 곱씹어본다. 발아래론 온통 벚꽃이다. 벚꽃뿐만 아니라 개나리와 진달래도 아직 만발이다. 이래저래 봄은 화려하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