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배추장다리꽃
이승철
연일 계속 되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남녘땅 섬진강가에서 매화꽃을 피우며 북상한 봄이 어느덧 서울에도 올라왔다. 서울의 봄은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로부터 시작된다. 해마다 맨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뒤이어 개나리가 피어나고, 목련이 피어나더니만 요즘은 벚꽃까지 와글와글 피어나고 있다.
우리 집 베란다의 봄은 배추장다리꽃이 알렸다. 3월 초순부터다. 지난 가을에 어린 배추 네 포기를 사다가 화분에 심은 배추들 중 하나다. 네 포기 중 두 포기는 집 없는 달팽이들의 먹이로 사라져버렸다. 또 한 포기는 비료를 너무 가까이 주어 말라버렸고 겨우 한 포기가 살아남았다(지난 12월에 올린 기사 '배추야 고맙다, 멘붕에서 구해줘서').
그 배추 한 포기가 겨울 추위 속에서도 곱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나는 동안 배추는 커다란 화분을 가득 채울 만큼 크게 자랐다. 한겨울 모진 추위 속에서도 푸르고 싱싱하게 자란 배추가 먹음직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네 포기 중에 겨우 한 포기가 살아남아 잘 자란 것이 신기하고 귀하여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3월이 되자 배추 포기 가운데서 무언가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있었다. 배추장다리였다. 날마다 물을 주며 지켜보는 가운데 장다리는 쑥쑥 자라났다. 그리고 3월 10일경부터 장다리 줄기 끝에서 작고 노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며칠 뒤부터 연산홍 화분도 꽃봉오리가 벙긋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