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을동, 어우늘, 리생이, 드르구릉 등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가졌던 중산간지대 마을들이 4.3이후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은 4.3 당시 마을을 지키던 팽나무와 표지석만 남아 있는 데가 많다.
진희정
"이제부터 우리는 65년 전 조천읍 선흘리 주민이 되는 겁니다. 어디 선흘리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순이 삼춘'도 좋고, 총도 피할 수 있을 만큼 달리기가 빠른 <지슬>의 몰다리(말다리) 상표도 좋고, 온통 돼지 걱정뿐이던 원식이 삼춘도 좋고, 찰진 욕을 내뱉던 용필이 삼춘도 좋습니다. 그해 11월 토벌대 공세를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간 주민들이 돼서, 진짜 제주를 느껴봅시다."
전날의 폭우는 그쳤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바다는 여전히 하얀 포말을 쏟아내던 지난 7일, 제주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가 이끄는 4·3역사순례에 예년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집안 어른들이 희생된 하가리 인근의 '육시우영' 밭을 차마 못보고 돌아온 장씨 가족과 요코하마에서 온 일본인 여행객들 그리고 <지슬>에서 '용필삼춘'으로 열연한 오멸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 양정원씨도 함께했다.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 곳에는 액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에, 누구도 다시 그곳에 살지 않는 풍습이 있는 제주도에는 4·3의 비극을 간직한 마을들이 곳곳에 있다.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전소된 뒤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고 버려진 중산간지대 마을은 2005년까지 조사된 것만 108곳. 마을 단위 중 큰 피해지로 손꼽히는 조천읍 선흘리는 제주 북동지역 함덕리에서 한라산 쪽으로 6~7km 올라간 곳에 있는 대표적인 '잃어버린 마을'이다.
제주방언으로 숲을 가리키는 '흘(仡)'이 지명에 들어갈 정도로 숲이 울창한 선흘리는 예로부터 땅이 비옥하고 땔나무가 풍부해 축산과 농업이 발달한 부촌이었다. 특히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지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숲인 '곶자왈'에는 당시 선흘리 주민이 식수로 썼던 골연못이 남아 있어, 물 귀한 섬에서 큰 마을을 이뤘던 선흘리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자연동굴과 아름드리 나무가 많은 곶자왈이 선흘리 주민들의 최후를 기억하는 장소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양동윤 대표는 "가을걷이한 곡식과 가축을 두고 갈 수 없었던 주민들이 며칠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곶자왈에 숨어 지내다 변고를 당했다"며 "군인들이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소개령에 따라 해안으로 이동한 일부 주민까지 고문하면서 자행된 강경진압작전 초기에 선흘리 주민들이 대부분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숨어 지낸 지 나흘 만에 '반못굴', '목시물굴', '밴뱅디굴'이 줄줄이 발각돼 총살당했습니다. 주민이 가장 많이 숨어 있던 목시물굴의 한 생존자는 돌도 안 지난 딸이 자꾸 우니까 토벌대에게 들킬까봐 입을 틀어막았는데, 숨이 막혀 아이가 죽었다고 증언했습니다. 4·3평화기념관에 위패로 모신 희생자 207명 사연만 해도 이렇게 가슴 저미는데, 아직 저 깊은 곳에 묻힌 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불타는 섬, 질식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