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철거 안돼!" 분향소 지키는 노동자들3월 8일 오전 서울 중구청 철거반이 덕수궁 대한문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강제철거할 예정인 가운데 영정을 든 동료노동자들이 분향소를 에워싸고 있다.
권우성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군의 검은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아직 눈꺼풀의 무게가 물먹은 솜처럼 고단한 몸을 한껏 짓누르고 있었다. 새벽 버스의 요란한 운행소리도, 할증 풀린 택시의 질주음도 쏟아지는 잠만은 막지 못했다. 갑작스런 무리들의 움직임을 눈치 챈 순간 모든 상황은 끝나 있었다. 제대로 손 한번 써볼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잘 짜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연극'처럼 그날 새벽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4일 새벽 5시 30분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가 침탈당했다. 공무집행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게도 야음을 틈 탄 작전에 쌍용차 해고자들은 저항다운 저항조차 할 수 없이 당하고 끌려갔다. 애써 만들고 가꿔온 대한문 분향소가 또 다시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의 전광석화 같은 작전에 주저앉고 파괴됐다.
잠자던 세 명의 노동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철거과정에서 두 팔이 뒤로 꺾이고 사지는 들려 새벽 이슬이 그대로인 찬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들은 개인 짐은 물론 신발까지 철거해갔다. 새벽 찬 바닥에 맨발로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발가락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한문 분향소 철거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3월 8일엔 이른바 '행정 대집행'이란 이름으로 강제 철거에 나섰다. 해당 관청인 중구청은 가로환경과를 중심으로 도시 환경을 위해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남대문경찰서는 울고 싶던 차에 뺨 맞은 격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중구청의 행정대집행에 부역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법적 절차는 물론 실체적 요건 또한 불법이며 부당함을 주장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3월 3일 전과 27범인 방화범에 의해, 1년 가까이 유지되던 분향소가 전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따라서 중구청이 그동안 분향소 철거 계고를 한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행정대집행을 위해선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대집행은 장소나 주소가 아닌 대물 즉 물건에 대한 집행을 말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중구청은 이를 무시했다. 불법적인 행정력의 행사에 해당한다.
이런 전력이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중구청은 이번 4일 철거는 도로법을 들먹이며'행정대집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할 수 있는 '즉시 철거'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즉시 철거 대상에 해당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왜냐면 즉시 철거 또한 불법점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인데, 분향소는 집회 시위 물품 목록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법적인 문제가 충돌하고 부딪히는 과정이며 그리고 중구청과 대화는 물론 중구청장과의 면담을 실무적으로 조율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강제 철거를 통해 우리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닌 이 사회의 관용과 옹졸함 그리고 연대와 유대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