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서거를 보도하는 영국 BBC
BBC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일 밤(한국시각) 뇌졸중으로 타계했다. 향년 87세.
대처 전 총리의 대변인 팀 벨 경은 성명을 통해 "대처 전 총리가 뇌졸중으로 투병 중 평화롭게 숨졌다고 가족들이 밝혔다"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매우 슬프다"고 발표했다.
영국 버킹엄 궁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대처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며 "여왕이 대처의 유가족들에게 개인적으로 애도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유럽을 순방 중이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대처 전 총리의 서거 소식을 전해듣자 프랑스 방문을 취소하고 긴급 귀국을 결정했으며, 총리실 대변인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총리, 위대한 영국인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전 세계는 위대한 자유의 투사를 잃었고,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며 "대처 전 총리의 유족과 영국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이 국장에 준해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치러질 것이며 시신은 화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장은 통상 군주에게만 허락되나 국가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 숨졌을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프랑스-스페인 연합군과의 트라팔가 해전을 이끈 넬슨 제독,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웰링턴 장군 등에 이어 가장 최근에는 1965년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졌다.
식료품상의 딸, 영국 최초 여성 총리가 되다 1925년 영국 런던 북부의 그랜덤에서 식료품상의 딸로 태어난 대처의 결혼 전 이름은 마거릿 힐다 로버츠였다.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는 식료품상에 만족하지 않고 지역 정치에 뛰어들어 그랜덤 시장까지 지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선거 운동을 도우며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접하게 된 대처는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화학과를 졸업한 뒤 데니스 대처와 결혼했다.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대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했다.
1959년 보수당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대처는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의 영국 정계에서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재무부 장관, 에너지 장관, 교통부 장관, 교육부 장관 등을 거치며 역량을 발휘했다.
자신을 발탁한 히스 내각이 정권을 잃었지만 대처에게는 오히려 엄청난 기회가 되었다. 정권을 빼앗긴 책임을 물어 히스의 제치고 보수당의 당권을 차지하며 영국 최초로 여성 당수가 되었고, 내친김에 1979년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승리를 이끌며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에 올랐다.
정권을 잡은 대처는 화려한 제국의 위세를 잃고 쇠퇴하던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나섰다. 노동당의 국유화, 복지정책을 내리고 철저한 긴축정책과 시장주의 도입, 금융시장 활성화 등으로 짜인 이른바 '대처리즘'으로 영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대외적으로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틀랜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영유권을 지켜냈고, 당시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권과 밀착하여 영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