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것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지렛대원리를 이용한 도르래를 만드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윤수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기억,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괴롭히거나 놀렸던 여자 동창이 한명쯤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무줄놀이를 하면 고무줄을 끊고, 공기놀이를 하면 공깃돌을 빼앗고, 다른 남학생이랑 이야기라도 하면 알나리깔나리 하며 유독 놀렸던 여자 동창생이 한 명쯤은 있었을 거다.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는 전형적인 악동, 심술이고 괴롭힘이다. 학교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눈높이로 보면 혼나고 꾸중 들어야 할 못된 짓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또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사랑이 흥청거리는 시대다. 새로 나오는 노랫말 치고 '사랑'이란 말이 빠진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메마른 시대라고 한다. 장마철에 마실 물을 걱정하듯이 사랑이 흥청거리는 세상에서 사랑에 갈증을 느끼고 있으니 뭔가가 잘 못돼도 한참 잘못된 세상이다. 왜 그럴까?
여러 종의 나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 숲을 생각해 보자. 취나물, 곤드레, 도라지, 잔대, 다래, 산마늘, 두릅, 고사리, 더덕, 돌나물, 미나리 심지어 산삼까지…. 먹을 수 있는 나물이나 약초가 이렇게 수두룩하게 자라고 있다. 하지만 미나리나 돌나물 정도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겐 산삼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숲일지라도 미나리와 돌나물이 많지 않으면 그 숲에서는 산나물을 찾기 힘든 고단함 뿐이다.
알나리깔나리, '루두스'라고 하는 사랑이었다대개의 요즘사람들이 떠올리는 사랑은 '에로스'나 ''아가페'정도이다. 도덕이나 윤리시간에 배운 게 그 정도이니 알고 있는 것도 그 정도이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는 에로스나 아가페 말고도 다양한 사랑, 필리아, 루두스, 프라그마, 필라우티아, 메따 등으로 분류되는 사랑도 있었다.
에로스나 아가페만이 아니라 필리아, 루두스, 프라그마, 필라우티아, 메따 등도 자각하고 있는 그리스시대 사람과 에로스나 아가페 정도만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 중 어느 누구의 삶이 사랑이 풍요로운 인생이 될까? 물어보나 마나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나리와 돌나물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산삼과 같은 진귀한 약초(나물)들이 제아무리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텅 빈 나물바구니를 메고 다녀야 하는 가난한 심마니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랑도 그렇다. 에로스나 아가페 정도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타의 사랑이 제아무리 주변에 널려있어도 여타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니 사랑에 목말라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심마니로 돌아가 보자. 지혜로운 심마니라면 늙은 심마니를 뒷방노인으로만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늙은 심마니가 산속을 헤매며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잘 배우고 익혀서 더 좋고 많은 약초나 산나물을 채취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심마니로 자랄 것이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것은 산나물이나 사랑만이 아니다. 가족, 공감, 일, 시간, 돈, 감각, 여행, 자연, 신념, 창조성, 죽음 방식 등이 인생살이에 있어 필수아미노산 같은 주제들이다.
이런 주제들이 인생살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주제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을 보다 꼼꼼하고 넉넉하고 괜찮게 챙길 수 있는 경이로운 노-하우를 가르쳐줄 사람은 흔하지 않다.
여기에 그 보물창고 같은 노-하우가 있다. 자칫 뒷방늙은이처럼 취급되고 있었을지도 모를 역사, 많은 경험과 검증,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지만 지나간 역사가 되고,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걸음 뒤로 밀려나 있는 늙은 심마니처럼 취급되고 있을지도 모를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기하고 경이로운 역사를 담고 있는 <원더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