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진각국사비
이상기
진각국사비는 현재 귀부만 온전하고, 탑신은 크게 훼손되었으며, 이수는 없다. 그렇지만 비문의 내용은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잘 남아 있다. 비문에 따르면 진각국사는 단속사 주지와 수선사주를 지냈다. 전라도 화순 사람으로 이름은 혜심이고 법호는 무의자(無衣子)다. 1202년 조계산 수선사에서 보조국사 지눌을 은사로 출가했다. 1210년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그의 뒤를 이어 수선사 2세 사주가 되었으며, <선문염송> 등 많은 책을 남겼다. 1234년 6월 26일 가부좌한 채 앉아서 입적하니 세수 56세, 법랍 32세였다고 한다.
이에 고종은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의 이름을 원조지탑(圓炤之塔)이라 했다. 부도는 광원암(廣遠庵) 북쪽에, 그리고 진각국사비는 1235년 월출산 월남사(月南寺)에 세워졌다. 비문은 문하시랑 평장사 한림원사 이규보가 짓고, 음기(陰記)는 상서 한림학사 최자가 지었다. 이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이었다. 이규보의 비문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