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의 기러기 떼천수만의 농경지와 두 개의 호수(간월호, 부남호)는 철새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지요하
"저 새들에게 특별한 감각이 있었으면 좋겠어.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 자신들을 해칠 사람인가 아닌가를 구별할 수 있는 그런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짐승의 한계 속에서나마 사람의 양태를 보고 뭔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그런 영묘함을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내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꿈도 야무지다는 말도 있고, 새들이 그런 영묘함을 지니고 있다면 이미 새가 아니라는 말도 했고, 밀렵 따위로 죽어가는 새는 한 마리도 없을 거라는 말도 했다. 그러더니 더욱 재미있는 말을 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일제히 동시에 날아오르는 것, 혼자 있을 때도 잔뜩 경계를 하다가 훌쩍 자리를 뜨는 것, 그런 생존방식 자체가 영묘함이 아닐까요?"나는 아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새들의 평화를 방해한데서 오는 미안한 마음이 으레 섭섭한 마음으로 이어지곤 하는 것은 길래 변함이 없었다.
개들을 피하는 색다른 이유걷기운동을 하면서 미안함을 겪는 경우는 또 있다. 좁은 개장 안에 갇혀 있거나 목줄에 매인 채 슬프게 살아가는 개들을 볼 때 겪는 일이다. 그런 개들 앞을 지날 때는 미안하고 안쓰럽고 슬픈 심정이 된다. 녀석들이 개장 안에서 또는 목줄에 매인 채로 나를 보고 짖어댈 때는 제발 자유롭게 해달라고 절규를 하는 것만 같아 절로 한숨이 나오곤 한다.
나는 걷기운동을 할 때마다 작은 가방을 어께에 메곤 하는데, 가방 안에 물병 외로 빵이나 과자가 들어 있는 때가 많다. 나는 혈당관리에 신경 쓰는 당뇨환자이고 또 매일 두 시간가량 먼 길을 걷기는 하지만 빵이나 과자는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개들에게 주기 위한 것들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개장 안에 갇혀 있거나 목줄에 매인 채 처량하게 살고 있는 개들에게만 먹을 것을 주곤 한다. 그런데 처음 보는 개에게 먹을 것을 줄 때는 잠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먹을 것을 한 번 주었다 하면 그 개는 나를 반드시 기억한다. 한 달 후에 보더라도 나를 용케 기억하고 반색을 한다. 이리 뛰며 저리 뛰며 반가워 죽을 양이다. 그런 녀석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하지만 매일같이 가방 안에 먹을 것을 지닐 수는 없다. 가방 안에 먹을 것을 지니지 않은 날은 나를 기억하는 개들을 만나지 않는 길을 선택하곤 한다. 먹을 것을 주었더라도 돌아올 때는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 다른 길을 밟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