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하루가 긴 하루를 부르는 것

[시인 서석화의 음악 에세이] 김도향 <목이 멘다>

등록 2013.03.29 18:12수정 2013.03.2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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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이별을 알고 있다. 아니 이 문장은 너무 허약하다. 이별이 가슴 아프지 않은 게 어디 있나. 온 세상 지구인의 머릿수를 다 합친 산을 만들어 그곳을 기어 올라가도 털어 내지지 않는 아픔, 이별이란 각자에게 그런 것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난 22년 동안 나의 무엇을 그들은 보았을까? 이름도 성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걸어오는 전화를 참 많이도 받았다. 벨이 울릴 때부터 수화기를 집어 드는 짧은 순간, 이미 느껴지는 한 사람의 비탄과 울음. 원망과 미련이 목소리보다 먼저 귀에 들리던 시간. 낮도, 밤도, 새벽도 어느새 '내 것'만은 아니었다.


이별!
물리적으로는 헤어짐, 마주 보았던 사람이 서로 등을 보이는 일이다. 따라서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도 서로의 반대쪽을 향한다. 함께했던 시간이 두 사람이 옮기는 걸음을 따라 멀어진다. 그림자도 남지 않은 텅 빈 공간이 생긴다. 그러나 이별이 한 사람만의 의식일 때, 더 오래 사랑하는 사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 공간에 살게 된다. 기억이 추억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끝났다는 느낌은 여전히 낯설다.

밀어내고 싶은데
버려내고 싶은데
너를 바라보면 너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우린 연이 아니데
우린 여기까진데
너무 잘 알면서 쉽지가 않아서
가슴이 무너진다

아주 드물게는 정신이 백지처럼 투명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식사도 커피도 운동까지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말 그대로 '충실하게' 한 날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자지러질 듯 숨이 막혀오고... 냉기 성성한 석상 같은 시간에 던져진다고 했다.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한 마디 못한 채로
숨 쉬듯 숨 넘기듯
끝내 오늘도 난 영원히 난
혼잣말로 소리쳐본다
널 갖고 싶다고

혼자 하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어렵게 말해본다. 시작은 같이 하지만, 끝은 누군가는 더 멀리 가는 게 사랑이지 않겠냐는 말도 해 본다. 오래 견뎌주는 사람이 결국 나중에 회한이 덜 할 거라고 먹히지도 않는 덕담도 얹는다.


그가 운다. 그의 울음이 전이된 몸에서 헛 땀이 흐른다. 위로가 위로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이별이다. 그가 산 하루가 다시 긴 하루를 부른다. 아직 그에게 이별은 당도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으며 그가 부른다.

"혼자서만 욕심내 본다/ 내 여자이기를/ 내 사랑되기를..."


끝내 그의 목이 멘다.
#서석화 #김도향 #이별 #목이 멘다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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