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축제장을 찾아 5km 남짓 지루한 아스팔트 길을 걸었을 때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가족을 만나 길을 물었다.
김종길
하는 수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은 지루했고 여행은 비루했다. 대개 여행을 하면 10km 이상을 걷는 게 태반이지만 오늘은 아내와 딸이 함께여서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혼자라면 걷는 것이 당연한데 아이와 아내에게 9km의 아스팔트길은 가혹했다. 무엇보다 따가운 봄 햇살이 걸음을 힘겹게 했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커플이 아직 40분은 더 가야 된다는 말을 했을 때 아내는 절망했고, 아이는 체념했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탄 무리들이 지나가며 "2km" 밖에 남지 않았다고 소리쳤지만 아내는 이미 단념하고 있었다.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이 지경이 되니 걷는 즐거움을 역설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루하고 건조한 아스팔트를 보며 마냥 걷고 있는데 내포마을쯤 왔을 때 아내의 기쁨에 겨워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버스였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아내는 깃털처럼 버스에 뛰어들었고 아이도 덩달아 나는 속도로 달려갔다. 다행히 버스는 빈자리가 더러 있었고 아내와 아이는 로또라도 맞은 양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2시간 남짓 걸었는데 허무하게도 버스는 십분도 채 달리지 않아 축제장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다니... 귀를 찢는 듯한 뽕짝소리가 버스 창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아, 이곳이 축제장이구나. 출발한 지 두 시간이 넘어서야 드디어 매화축제장에 도착한 것이다. 영포마을의 매화와는 이렇게 첫 대면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