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노총... 지도부 공백 5개월째

선관위, 이갑용-백석근 후보 재투표 결정... 위원장 선출 논란 계속

등록 2013.03.27 21:04수정 2013.03.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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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보통 '내셔널센터(National Center)'라고 부른다. 그 안에는 자본과 국가를 상대로 사회적, 국가적 교섭을 벌이는 모든 노동조합의 본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 민주노총의 최고 지도부인 위원장과 사무총장 자리가 지난해부터 5개월째 공석이다. 두 번이나 선거를 진행했지만, 위원장을 뽑지 못했다. 민주노총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초유의 지도부 공백상태다.

최다득표 불인정... 위원장-사무총장 재투표 결정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7기 임원선거 위원장-사무총장 선거 재투표를 결정했다. 러닝메이트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기존에 출마했던 이갑용(위원장)-강진수(사무총장) 선본과 백석근-전병덕 선본을 놓고 다시 투표한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치러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갑용 선본이 최다득표를 기록했지만,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선관위는 최다득표자를 대상으로 2차 찬반투표를 진행하려 했지만, 투표를 마치고 자리를 떠난 대의원들이 많아 의사정족수 미달로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이에 선관위는 지난 26일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 "선거통합관리규정 2편 간선제 27조 2항에 최다득표자와 차점자에 대해 투표한다"는 내용의 결정사항을 보고했다. 민주노총의 선거통합관리규정은 일종의 결선투표제다. 보통의 결선 투표제는 세 개 선본 이상이 출마했을 경우에 적용된다. 그러나 민주노총 규정에는 '세 선본 이상'이라는 제한 사안이 명시되지 않았고, 선관위는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최다득표자(이갑용)과 차점자(백석근)를 놓고 2차 투표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규정 그대로를 적용했다고 하지만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임시대의원대회 당시 선관위는 최다득표를 한 이갑용 선본을 놓고 찬반투표를 진행하려고 했다. 상식적으로 양자대결의 경우 최다득표자와 차점자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회 성원이 되는지 확인해 달라는 재석 확인 요청이 있었고 대회성사 정족수에 한참 모자라는 대의원만 자리를 지켰다. 이로 인해 대회는 해산됐다. 이후 결과적으로 현장에서 찬반투표를 진행하려던 선관위의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의 결정사항을 보고받은 중앙집행위 회의에서도 상당한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1차 투표에서 사실상 승리한 이갑용 선본은 선관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했고, 백석근 선본은 "선관위의 결정사항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 선본은 모두 이후 논의를 더 진행해 최종적인 입장을 내놓겠다고 한 상황이다.

그러나 양 선본의 의견에 따라 선관위의 결정사항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다시 임원선출을 위한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을 공고하고 집행하기까지는 앞으로 한 달 가까이 걸릴 전망이다.


위원장 못 뽑는 민주노총... "위기불감증이 더 무섭다"

문제는 대회 의결정족수 미달로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한 것이 지난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초유의 사태라는 점이다. 지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총 570명의 투표를 해 이갑용 선본이 272표, 백석근 선본이 258표를 얻고 무효표가 40표 나왔다. 그러나 최다득표자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하려고 했을 때는 자리에 268명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대회 의결정족수인 460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숫자였다. 차기 위원장을 선출하는 선거대회조차 정족수 미달로 성사하지 못했다. 대내외적으로 한참 체면을 구긴 셈이다.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지난해 11월 김영훈 전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맞았다. 이후 직선제 도입 관련한 논란을 겪고 난 후 백석근 후보가 입후보했지만, 선거 자체가 무효화 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후 백석근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운영이 됐지만, 이 또한 자격 논란으로 내부 논쟁이 심화됐다. 그렇게 여기저기 상처가 난 상태에서 치러진 것이 이번 임원선출을 위한 임시대의원대회였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에 남아 새 위원장의 모습을 지켜보려는 대의원은 '소수'에 불과했다.

단순히 대의원들의 성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여기에는 오랫동안 굳어진 민주노총 내의 정파 대결 구도가 한 몫하고 있다. 민주노총 내부 관계자는 "사실 두 선본의 공약을 비교해 놓으면 큰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없다, 조직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는 내용은 똑같다"며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정파적 이해관계였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결국 대의원들 가운데 다수가 표를 던진다는 행위 이상으로 대의원대회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무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지도부 부재로 드러나는 가장 큰 손실은 본래 민주노총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결국, 내셔널센터의 위기다. 개별, 산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노동 사안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내셔널센터로서의 민주노총이 부재한 상황이다. 그것도 정권 초기, 새 정부와 관계 주도권을 놓고 전략을 세워야 할 판에 그룹 내 리더가 없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또 다른 민주노총 산별 관계자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오히려 밖에서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걱정이 많다"며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곧 온다고 하는데 이를 상대할 사람도 없다, 양성윤 직무대행(부위원장)이 있지만 선출된 위원장과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한 것을 단순히 선거문제로 바라보는 게 정말 무섭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는 위기 불감증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관위 결정사항이 중앙집행위에 보고되던 지난 26일 오후, 서울 시청의 재능교육 농성장이 철거를 당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철탑 농성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고, 이마트를 비롯한 서비스유통업의 고용실태도 사회적 논란이 됐다. 물론 이들 현장에는 투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몫이 있다. 이제 민주노총의 몫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다.
#민주노총 #백석근 #이갑용 #내셔널센터 #재능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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