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묘역별들이 잠들어 있는 장군묘역
최오균
사람이 겸손해지는 장소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이고, 다른 한곳은 바로 이 묘지입니다. 모두가 죽음으로 연결되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묘지에는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끝낸 사람들이 땅 속에 누워 있습니다. 그 묘역을 걷다보면 우리는 삶과 죽음,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우게 됩니다.
극작가 손튼 와일더의 '우리 읍내(Our Town)'을 보면 둘째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젊은 여주인공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고 온 세상에 미련이 남은 에밀리는 유령들에게 단 하루만 살아생전 평범하고 사소했던 삶의 세계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마침내 에밀리는 14년 전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 받습니다.
이승으로 내려온 에밀리는 12살 소녀로 돌아옵니다.
"그 베이콘 천천히 잘 씹어 먹어라." 이승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니 아침밥을 잘 씹어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여전히 들려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버지, 이모와 친구에게서 온 생일 선물들… 에밀리는 벅차오르는 안타까움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두 분은 어쩌면 저렇게 젊고 아름다우실까? 뭣 때문에 늙어야만 할까? 엄마 내가 왔어요. 나도 컸죠, 난 엄마 아빠가 좋아. 무엇이고 다 좋아요." 에밀리는 모든 것이 자꾸 지나가는데 그걸 모르고 지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무덤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승의 세계를 한 번 더 바라보며 말합니다.
"난 몰랐어요. 모든 것이 자꾸 지나가는데 우린 그걸 모르고 있는 거예요. 날 데려다주세요. 산마루터 무덤으로요. 하지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겠어요. 안녕, 속세야 잘 있어. 우리 읍내도 그만야.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아버지. 째깍거리는 시계도 잘 있어. 그리고 엄마가 가꿔놓은 해바라기도. 맛있는 음식과 커피도. 새로 대려놓은 옷과 더운 물이 나오는 목욕탕도… 잠자는 것과 눈을 뜨는 것도. 아 대지. 너무도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어서 그 진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인가.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까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일분일초를 말이에요."이승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저승의 세계로 돌아 온 에밀리에게 유령이 된 싸이먼 스팀슨은 말합니다.
"그렇다니까. 어제야 안 모양이지. 산다는 게 다 그런 거라니까요. 무지의 구름장이나 타고 떠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하면서 그냥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밖에. 흡사 백만 년이나 살듯이 허송세월하고. 늘 자기중심의 격정의 밥이 되고 이제야 아셨지? 그게 바로 당신이 돌아가 보고 싶었던 행복한 생활이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사람은 마치 백만 년이 살 것같은 착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이 금방 다가오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꽃을 들고 온 중년부부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의 묘지에 오셨느냐고. 중년 남자는 35년 전에 돌아가신 형님의 묘지를 찾아왔다고 답했습니다. 묘지에 누워있는 형님이 그 시간 이승의 세계로 돌아왔다면 자신을 찾아 온 아우와 제수씨에게 무엇이라고 할까요?
고요한 묘지를 산책하다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의 작가 사라 밴 브레스낙은 '혼자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일을 알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정작 자신을 알기 위해 할애한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맞이한 생의 마지막 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졌던 사소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멋진 것들로 가득 차 있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