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위헌 여부 선고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된 박한철 헌법재판관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유신헌법 53조, 긴급조치 1·2·9호에 대한 선고를 내리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유성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재야 변호사 출신 송두환 재판관의 후임 자리에 박 대통령이 현직 판사 2명을 채움으로서 헌법재판관 9명은 변호사 출신은 한 명도 없이 전원 고위 판사·검사들로 채워지게 됐다. 검사 출신이 2명(박한철·안창호)이고 판사 출신이 7명(이정미·김이수·이진성·김창종·강일원·조용호·서기석)이다.
이는 15년 이상 경력의 판사·검사·변호사로 자격 요건을 제한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을 감안하더라도 명백히 퇴행이다. 지금까지는 헌재 구성의 다양화 측면에서 자격 요건에 학자 등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배부른 소리가 됐다. 판사 출신은 대법관 추천(3명)으로 충분하고 대통령 몫(3명)은 능력있는 재야 법조인을 발굴해야 한다는 법조계와 학계·시민사회의 공감대도 간단히 무시된 상황이다.
또 박 대통령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임에도 네 번의 선택에서 한 번도 여성을 지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관 중 여성은 여전히 한 명(이정미)뿐이다. 재판관 중 여성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성 대통령 시대여서 더욱 도드라지는 상황이다.
9명 중 6명이 서울대를 나왔다는 점, 5명의 출신지가 영남인 점도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념성향·성별·출신·지역·학교 등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사회의 주류·기득권층의 목소리를 넘어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다양한 의견을 결정에 반영하리라는 기대를 품기 힘든 인적 구성이다.
헌재 구성의 다양성 후퇴 우려는 이명박 정부 후반 5명의 헌법재판관이 교체되면서 제기된 바 있다. 이번 박 대통령의 인사는 그에 강력한 마침표를 찍었다는 평가다.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된 박한철 후보자도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헌법재판의 특성상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이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동감한다"며 "앞으로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현 구성은 2017~2018년이 돼야 변화가 가능하다.
시민사회에서는 "앞으로는 되도록 갈등 사안에 대해 헌재로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가봐야 뻔하다"는 조소 섞인 탄식까지 나오고 있다. 점점 다양화되는 사회에서 더욱 동질해진 헌재가 넘어야 할 벽이다. 헌재 인사 발표가 난 지난 21일, 대법원에서는 이미 2010년 내린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 판단을 헌재는 3년이나 지나서야 결정해 발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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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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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검사' 소장, '삼성관리 의혹' 재판관 "가봐야 뻔해...앞으로 헌재로 가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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