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사회복지공무원, 지난 두 달 무슨 일 있었나

담당 인력 충원 없는 복지정책 확대, 결국 화 불러

등록 2013.03.21 18:27수정 2013.03.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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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퇴근시간이 밤 11시, 그외는 새벽2시나 되어야 퇴근했다. 주말에도 업무가 많아 출근을 했다."

지난 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울산 중구 동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공무원 안아무개씨의 지난 2개월간의 일과다. 평소 고인과 친분이 있던 울산시의회 환경복지위원회 류경민 시의원은 유족의 증언을 듣고 이같이 말했다.

공개된 그의 유서에는 "누구에게나 고되고 힘든 자리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열심히 버티라고 말해주겠지, 이 자리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깔끔하게 사라져 준다면 적어도 내가 진짜 절박했노라고 믿어줄 것이다. 지난 두 명의 죽음을 약하고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으로써 내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고 적혀 있다.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37살 나이에 동 주민센터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출근한 그의 기대는 컸을 것이다. 올해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그에게 지난 두 달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육신청자 1500명 혼자 신청받고 밤 늦게까지 업무

그는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일하다 사회복지공무원에 합격하자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기대 속에 첫 출근한 곳은 중구의 한 동주민센터. 북구 매곡동에 있는 집과는 상당히 먼 거리다. 유족 증언에 따르면 그는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자 사망하기 전 지난 2주간은 직장과 가까운 본가에서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 18일에도 부인은 "당연히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본가에서 잠을 자고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직장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자 집 근처 치안센터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는 유서에 "나는 인간이기에, 뜨거운 피와 따뜻한 삶이 도는 하나의 인격체이기에 최소한의 존중과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공공조직의 제일 말단에서 온갖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건 머리 일곱 개 달린 괴물과의 사투보다 더 치열하다"고 적었다.

그가 공무원으로서 첫 발령을 받은 곳은 낯선 업무의 동 주민센터다. 여기서 그는 보육과 교육업무 그리고 노인, 장애인, 한부모 업무까지 함께 했다. 특히 해당 동은 보육신청자가 많아 1500명을 혼자 신청받아 밤늦게까지 전산처리를 했고 심지어 주말에까지 출근을 했다고 한다. 무상보육의 확대, 여기다 더해 기존 교과부 업무인 학교급식비 등 4개 항목 업무가 올해부터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에게 전가됐던 것이다.


류경민 의원은 "정부정책 중 복지업무가 많아지면서 사회복지공무원을 확충했지만 실상 행정직들이 하던 자리에 그대로 사회복지공무원이 들어가 인원이 보충되지는 않고 업무만 늘었다"고 설명했다.

류 의원은 또 "고인이 처음 발령받았음에도 바로 동에 배치된 점, 업무가 낯섬에도 과중된 보육과 교육 업무에 더해 기존의 노인, 장애인, 한부모 업무까지 함께 했다. 이것이 바로 일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공무원들의 현 주소"라고 말했다.

최근 사회복지공무원들의 잇따른 자살이 있기 전, 이들의 업무 과다는 수시로 지적되어 왔다. 특히 올해는 여기다 더해 초중고 교육비 지원 업무까지 이관됐지만 동 자치센터 사회복지공무원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다. 고인이 일한 곳도 8857세대 2만6000여 명 주민의 복지업무를 두 명이 도맡아야 했다. 결국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복지확대가 현실화됐지만 이를 실제로 담당하는 인력 시스템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공직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관료주의 개선해야

공직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관료주의도 지적된다. 울산인권연대 최민식 대표는 "고인의 유언장에서도 나오듯,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과중한 노동환경에 더해 공무원 사회에서 여전히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해소되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며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인력을 충원해 사회복지공무원의 업무를 분산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인원을 확충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자살하는 공무원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울산시민연대 김지훈 부장은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국가직 공무원이 아니라 지자체 소속"이라며 "공무원 충원은 총액인건비제도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처럼 현장 상황이 심각해도 현재로서는 인력확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11년, 정부가 사회복지직 인력 확충을 하면서 증원된 인력에 대해 한시적으로 3년간, 인건비의 70%만 부담하고 이후에는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했다"며 "현재 대개의 지자체는 정부가 부담했던 인건비의 70%를 자체 감당하기가 어려워 정부의 인력 충원 요구를 외면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은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공무원고시 열풍에도 경각심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 고인은 올해 1월 공무원 생활을 하기 전 열악한 임금체계인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해왔다. 학부형이 되는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이 더해진 것이다. 그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지만 꿈에 그리던 공무원 생활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었다.

울산 중구청의 한 공무원은 "그가 공무원이 되기 전 외부에서 공직사회가 풍요로운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며 "공무원은 마라톤과 같아 근무연수가 쌓이면서 호봉수가 올라가는 직업인데, 고인이 9급 말단으로서의 직무와 임금에 괴로워 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함께 개재됩니다
#사회복지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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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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