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17일 국회에서 양당 원내대표·수석부대표가 참석하는 '4인 회동'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회동이 끝난 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국정원만이 아니다. 민주통합당(민주당) 역시 이런 종북좌파 놀음에 거수기 노릇을 자임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새누리당과 정부조직법 개편과 국회운영에 합의하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약속했다. 지난해 6월 국회 개원 협상과 8월 임시국회 정상화 방안 때 자격심사를 약속한 데 이어 세 번째다.
자격심사의 형식상 명분은 지난해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의 부정 의혹이다. 비례대표 경선이 부정이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으로써의 자격을 자신들이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경선과정에서 부정의 당사자로 지목된 두 의원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검찰의 대규모 수사에서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최소한 매우 엄격한 법률적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두 의원에게 부정선거를 조작하거나 지시한 위법적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굳이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새누리당 소속 이군현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은 19일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 건과 관련해 "사법부의 판단 여부가 국회 윤리특위 운영의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면 정치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정치적 의도란 물어보나 마나 '종북세력 척결'이다. 국정원장이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에서 알 수 있듯이 종북으로 낙인찍은 정치적 반대파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대상이라도 정치적 우위를 이용해 공격하겠다는 의지. 민주당이 합의해 준 것이 바로 이 의지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미 지난해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애초 지난해의 합의가 이미 그런 의도에 손잡아 준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에 합의한 것이 더 가슴 아픈 이유는 한국 정치사에서 그들이 차지해온 위상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세력과의 다양한 연대 속에서 무차별한 국가폭력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수행했다. 이 때문에 많은 정치학자들은 민주당을 자유주의 세력, 혹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동일하게 '자유주의'를 내걸었지만 이 가치를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무기로만 사용한 뉴라이트 무리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집권 이후, 자칭·타칭 한국의 자유주의세력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유주의적 가치를 배신하는 행태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 와중에서도 자칭 자유주의세력들은 "설령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전체를 위해 희생하라"는 주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집단을 위해 잘못이 없는 개인이라도 희생하라는 주장은 자유주의 정신과 부합할 수 없다.
조작된 정치공작에 맞서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개인의 인권과 진실을 지키고자 했던 프랑스 '드레퓌스'사건에서 자유주의의 정신을 찾았던 이들은, 이제 진실보다는 정치공학을 즐긴다. 지난해 두 의원의 자격심사에 대한 정치적 합의 역시 대선을 앞두고 종북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민주당의 공학적 선택이 아니었는가?
새누리당의 주장과 유사하게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도 19일 KBS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자격심사가 "사법기관의 유죄 인정과 무관하게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자율권"이라며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윤리특별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때 자유주의세력을 자임했던 정당의 원내대표가 설령 사법적으로는 무죄이더라도 국회의원 자격은 박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식을 보여주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억울하면 소명하면 그뿐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우경화....결국 존재감 사라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