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장을 선출하고 있는 녹색당 대의원들녹색당은 부의장으로 추천받은 4명의 대의원 중 3명을 가위, 바위, 보로 선출했다.
손우정
기자가 대의원대회장에 들어선 것은 시작 시간인 오후 2시 정각이었다. 정당 대의원대회는 전국에서 대의원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제 시간에 시작되는 사례가 거의 드물다. 게다가 녹색당 대의원들은 '추첨'으로 선발되었으니 정족수(대의원 전체 정원의 50% 이상 참석)를 채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2시 대의원대회 장소에는 이미 꽤 많은 대의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대중으로 봐서는 이미 정족수는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임시 사회자의 진행으로 대의원대회에 대한 소개와 지역별로 참석자들의 인사가 있었고, 오늘 다룰 의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의장을 선출하는 순서.
"의장으로 추천하실 분?" 잉? 그렇다. 의장을 내부적으로 미리 선발해 놓고 대의원들의 추인을 받는 다른 정당과 달리 녹색당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여기저기서 의장 추천이 들어왔다. 그러자 이번엔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추천받은 사람은 세 명인데, 이 중 누구를 의장으로 할지가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 고비는 다른 두 명의 피추천자가 사양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다음으로, 부의장 추천하실 분?" 산 넘어 산이다. 이제 3명의 부의장을 선출해야 한다. 또 여기저기서 추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추천받은 사람은 총 4명. 이번엔 이 4명 중 3명을 뽑을 방법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다. 제안된 여러 방법 중 거수로 선택된 방법은 '가위, 바위, 보.' 웃음이 터졌나왔다. 추천받은 4명은 앞으로 나가 치열한 가위, 바위, 보를 해야 했다.
"다음은 서기 한 명을 선출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자원 하실 분?"
누가 손을 들겠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막 스쳐갈 즈음, 세 명이 손을 들었다. 이것 봐라? 의장보다 인기 있는 서기라니. 다른 정당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어쨌거나 3명은 다시 가위, 바위, 보.
본회의에 앞서 진행된 '모둠 토론'자,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곧 대의원대회가 시작되나 생각한 순간, 예상치 못한 순서가 끼어 있었다. 이른바 모둠 토론. 녹색당은 규모가 큰 정당은 아니지만, 전체 대의원 숫자는 140명에 이른다. 특히 평소 당 활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당원은 의제가 낯설 수도 있을 터. 이런 점을 고려하여 10명 정도로 구성된 소그룹에서 오늘 의제에 대한 토론을 먼저 진행하는 것이다.
"모둠 토론은 한 시간입니다. 시간 꼭 지켜주세요."
사회자의 당부가 이어졌다. 대부분 '선수'들로 이루어진 다른 진보정당 대의원들을 떠올려 볼 때, 한 시간은 너무 길다 싶었다. 타 진보정당에서는 대부분 대의원 각자가 자신이 속한 지역위원회나 정파별로 의제에 대한 입장을 정해 참석하기 때문에 한 시간이나 사전 토론할 이유가 없다. 본판의 표 대결에만 온갖 신경이 쏠린다.
그러나 슬쩍 지켜본 결과, 녹색당의 모둠 토론은 상당히 진지하게 진행됐다. 의제에 익숙하지 않은 대의원들의 질문과 다른 대의원들의 해설도 오고 갔고, 서로 다른 의견도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추 한 시간이 지났지만, 토론을 이미 끝낸 모둠은 거의 없었다. "자자, 말하는 사람만 하지 말고, 모두가 한번 이상 의견을 냅시다"라는 소리도 간간이 흘러 나왔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이 지나고 이번엔 정말 대의원대회가 시작되었다. 한 시간 전에 뽑은 대의원대회 의장이 사회를 봤다. 의장이 밝힌 참석자는 총 140명의 대의원 중 88명(63%). 정족수를 못 채울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참석율은 다른 정당과 엇비슷했다. 추첨민주주의에서는 출석하지 않은 대의원도 '전체 구성원 중 그 의제에 관심이 없는 이들의 비율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서울, 인천, 경기 등 가까운 지역 대의원의 참석률보다 먼 거리에 있는 지역 대의원의 참석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경남, 대전, 충북 지역과 소수자 할당인 청소년, 장애인 대의원은 100% 참석율을 기록했다.
수정안, 현장 발의안, 댐 건설과 2014년 지방선거와 관련한 결의문 2개를 포함해 10개의 안건이 토론되었다. 사전마당과 모둠 토론을 제외하면 순수 대의원대회가 진행된 시간은 2시간 30분. 통상 밤을 새우기 일쑤인 다른 정당 대의원대회에 비한다면 신속한 진행이긴 하지만, 신생 정당으로 첨예한 갈등적 의제가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적절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