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과 함께 우리나라 국물음식을 대표하는 곰탕은 쇠고기를 진하게 고아서 끓인 보양음식이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재료를 준비하고 오랫동안 고아서 만드는 그 노고를 감당할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지 싶습니다.
이안수
저녁에 지인이 찾아와 헤이리 인근의 한 곰탕집으로 갔습니다. 우리 일행이 들어가자 입구에서 담소를 나누던 두 분 중의 한 분이 앞치마를 하신 분께 눈치를 줬습니다.
"손님 오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교적 늦은 시간이라 큰 홀은 두 팀의 손님이 있었지만 휑했습니다. 입구에서 뵀던 그 어르신이 어느새 주방에 가계셨습니다.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곰탕집, 저는 첫 방문이었지만 이 근동에서 오래된 전통을 유지하는 집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리에 앉기 전 연세가 지긋하신 주방의 어르신께 여쭤봤습니다.
- 저 솥이 사골을 고는 곳인가요?"아닙니다. 저 솥은 손님에게 나가기 전에 끓이는 솥입니다. 이 솥까지 오려면 이틀이 걸려요. 집밖에 솥이 두 개 더 있는데 첫 솥에서 고아서 기름을 정리한 다음 두 번째 솥에서 다시 곤 다음 저장했다가 이곳으로 와요."
- 아이코, 품이 여간 드는 게 아니네요?"그러니 아무도 이 일을 물려받으려고 하지 않아요. 후계자가 없어요."
- 자녀가 어찌 되시나요?"딸이 둘입니다. 아무도 안하려고 해요. 이 집을 100년 갈 수 있도록 지어놨는데 물려줄 사람이 없으니..."
- 몇 년이나 되셨나요?"28년이요. 이 자리에서만 13년이고..."
나머지 15년은 조리읍의 봉일천에서 했다고 서빙을 하는 따님이 얘기했습니다. 과년(瓜年)의 따님에게 물었습니다.
- 결혼을 하시고 친정 일을 돕는 건가요?"못했어요."
- 안하신 거겠지요. 왜 안하셨나요?"남자를 만날 수가 없어요."
- 이곳에 오는 손님 중에서 마음 줄만한 사람을 골라도 되실 텐데... "이곳 손님들은 모두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세요."
신정균 선생님께서는 40여 년간 혼신을 받쳐 경영해오던 산업용보일러 회사를 최근에 매각하고 은퇴했습니다. 아들에게 이 분의 열과 혼이 담긴 이 회사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절했습니다. 아들의 뜻을 번복시키지 못한 신 사장님은 그 회사의 간부에게 회사를 물려줬습니다. 신 사장님의 경우는 그나마 그 회사를 물려받을 사람을 찾을 수 있었으니 다행인 경우입니다.
일본에서 전통여관(료칸·りょかん)을 운영하는 주인을 만났습니다.
일본의 전통여관은 도시화로 이미 사라진 일본의 전통 생활양식이나 규범을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체험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관을 운영하는 분들의 자부심이 높고 손님들에게도 일정한 정도의 품위를 요구합니다. 또한 각 여관마다 그 집의 전통에 바탕한 개성 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미식가들이 애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녁식사로는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연회요리에 이용하는 정식요리인 가이세키요리(會席料理·회석요리)를 냅니다. 신선한 최고의 제철 재료를 골라 맛뿐만 아니라 마치 조형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갖춘 이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랜 수련과 고된 노고를 필요로 합니다.
그 여관의 사장님은 아들의 거부로 자신의 대에서 가업이 끊기게 된 것을 가장 큰 우환으로 여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