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의 한 장면
KBS
여성이 남편과 무관하게 자기 이름으로 된 연금을 받는 경우는 네 가지이다. 하나는 이혼한 여성이 받는 연금이다. 혼인기간이 5년 이상이고, 이혼한 여성이 60세를 넘으면 혼인기간에 비례하여 전 남편의 국민연금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받는다. 이를 '분할연금'이라 하는데 가령 남편의 연금액이 50만원이고 이중 40만원이 이혼한 여성과의 결혼기간 중에 발생된 것이면 40만원의 절반인 20만원을 부인이름으로 받게 된다. 분할연금은 남편이 국민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한 시점에서 3년 이내에 청구해야 받을 수 있다. 2012년말 기준으로 7271명의 여성이 분할연금을 받고 있으나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과거에는 이혼한 여성이 재혼을 하면 분할연금이 전 남편에게로 다시 귀속되었으나 2007년에 법이 바뀌어 재혼한 경우에도 계속 분할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 이혼해도 전 남편 2명 모두에게 결혼기간에 비례하여 분할연금을 청구할 수 있다. 분할연금을 받고 있던 기간 중 전 남편이 사망해도 분할연금은 계속 지급된다. 하지만 남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혼한 전 부인이 사망하는 경우 부인에게 지급되던 분할연금이 다시 전 남편에게 귀속되지 않고 소멸된다(복잡한 내용을 다 쓸 수 없다. 국민연금 콜센터 '1355'로 전화하면 사례별로 친절히 가르쳐준다). 아무튼 이혼한 여성이 전 남편 연금의 절반을 받는 것은 남편의 연금에 여성 몫 절반이 들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이 독자적인 연금 수급권을 갖는 두 번째 방법은 직장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여 소득을 갖고 본인 명의의 최저가입기간인 10년 이상의 보험료를 불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남편과 무관하게 여성의 독자적인 국민연금 수급권이 발생하고 남편과 부인 각자가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보험료 납부 기간이 10년이 안 된 여성은, 가령 9년 11개월을 가입하면 60-65세가 되는 시점에 원금과 이자를 합쳐 돌려받게 된다.
소득활동을 전제로 보험료를 내고 그 대가로 연금을 받는 현재의 국민연금방식은 오래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여성들에게는 불리한 제도이다. 때문에 가입기간 10년 이상을 채워 여성 본인 명의로 연금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12년 말 기준으로 2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여 월평균 82만원의 연금을 받는 12만명 중 여성은 약 1만명으로 남성대비 8.3%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10년-19년을 불입하여 평균 40만원의 연금을 받는 68만명 중 여성은 17만 5천명으로 남성대비 25.7%이다.
여성들은 경제활동을 해도 출산·육아, 그리고 노인돌봄 때문에 휴직을 하거나 직장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보험료를 납부할 기회가 적어지고 국민연금을 정상적으로 받을 확률도 낮아진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육아나 노인돌봄 문제로 여성이 장기간 휴직을 할 경우 보험료를 납부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보험료 납부 인정제도'를 광범위하게 운영하고 있다(이것을 '연금 크레딧'제도라 한다). 가령 스웨덴은 육아의 경우 최장 4년을, 독일의 경우는 자녀당 3년의 육아기간을 보험료를 납부한 것으로 인정해준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육아나 돌봄으로 직장 단절 대신에 출산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2008년 이후 둘째아이 출산 시에는 12개월, 셋째아이는 30개월 등 출산 아동 수에 따라 최고 50개월을 보험료를 납부한 것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국민연금제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의 연금 수급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육아나 노인돌봄 등의 기간에 대해 좀 더 획기적인 보험료 납부 인정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여성 본인 명의로 연금을 받는 세 번째 경우는 최근 국민연금 가입자 '역차별 논란'이 벌어진 기초연금이다. 박근혜표 연금개편안이 내년 7월부터 시행되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65세 이상 여성노인이 소득하위 70%에 속하면 본인 명의로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남편이 생존해 있는 경우는 20만원이 아닌 16만원이 지급되고, 남편도 16만원을 받아 부부합산 32만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부부의 경우 1인당 20만원씩 40만원을 주어야 하나 생활비가 절약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20%인 8만원을 제외한 32만원이 지급된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연금이야기②를 참고하기 바란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여성의 연금수급권이 독자적으로 확보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특히 여성 본인의 은행계좌로 20만원(혹은 16만원)의 기초연금이 다달이 들어오는 것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여성노인들에게는 '획기적'인 변화다. 국민연금은 남성 수급자가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에 기초(노령)연금만은 여성이 전체의 65%에 해당하는 248만명으로 남성 134만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여성계에서는 그동안 줄기차게 기초연금의 대상자와 금액 인상을 요구해 온 것이다.
여성이 독자적 연금권을 갖는 네 번째 방법은 국민연금의 '임의가입제도'를 통해서이다. 원래 국민연금은 소득이 있는 경우만 강제 적용된다. 하지만 무소득자인 전업주부를 위해 1995년부터 '임의가입제도'를 도입하였다.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는 올해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중위소득 99만원에 대한 9%, 즉, 약 8만 9천원의 보험료를 본인이 전액 납부하면 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라고 가정하면 2013년부터 매달 9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10년정도 불입할 경우 현재가치로 약 15만원을, 20년을 불입할 경우 약 30만원의 노령연금을 남편의 연금과 무관하게 지급받는다. 임의가입은 가입년수 제한이 없기 때문에 25살에 결혼한 전업주부가 40년동안 계속 보험료를 불입하면 65세부터 현재 가치로 최소 60만원이상의 연금을 평생 여성명의로 받을 수 있다.(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28년부터 40%로 떨어지기 때문에 2013년에 가입하면 실제 연금액은 이보다 더 높다)
장기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국민연금 수급권을 획득하기 어려운 전업주부들도 보험료를 내면 연금을 주는 '임의가입' 제도는 여성들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아 가입자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정보에 빠른 강남3구 전업주부들은 상당히 많이 가입했다) 우리나라의 전업주부가 수백만명이 되지만 임의가입자는 고작 20만명이고, 이중 여성이 17만명으로 전체 85%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전업주부들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박근혜 연금개편안의 혼란으로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전업주부에게 과연 뭐가 유리할까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면 남편 이름이 아닌 여성 본인 명의로 '떳떳한' 연금을 받는 것은 ① 소득이 있는 활동에 종사하여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 ② 65세 이상 여성 노인이 받는 기초연금, 그리고 ③ 전업주부가 자발적으로 10년 이상 보험료를 불입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가지 방법은 장기간 직장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지속적으로 보험료를 불입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 중에서 직장이 없는 여성들이 굳게 마음먹고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하여 연금을 탈 수 있는 것이 바로 '임의가입제도'이다.
그렇다면 전업주부들을 위해 만들어진 임의가입제도에서 왜 전업주부들이 탈퇴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월 9만원의 보험료를 안내도 나중에 기초연금 16만원을 공짜로 받을 텐데 뭐하러 매달 9만원이라는 아까운 돈을 내지?" "임의가입해서 보험료를 내면 나중에 기초연금을 덜 받는다는데 손해보는 것 아닌가?" 일부 국민은 국민연금을 타면 기초연금은 아예 못 받는다는 잘못된 정보가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면 전업주부가 국민연금에 임의가입해서 나중에 국민연금을 타는 경우와 임의가입을 하지 않는 경우에 기초연금을 포함한 총 연금액이 어느 정도 변화하는지 두 가구의 사례를 한번 보자.